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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정 (3,794건)
인터넷을 통한 부모님의 신뢰,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당연한 나이였던 제가, 유일하게 부모님을 돕고 가르쳐 드릴 수 있는 일은 인터넷이 유일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아직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성장을 거듭해야 하는 처지의 아이였지만, 새로운 기술에 대한 흡수만은 남달라 인터넷의 사용 방법이나 메일을 보내고 사이트를 검색하는 등, 부모님이 가끔 일상적으로 접하기 곤혹스러웠던 방면의 일을 대신 처리해 드리는 일과에 무척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1가구 1PC가 한창 붐이었던 시절이라, 부모님도 저의 공부를 위해 컴퓨터를 들여놓고 인터넷까지 연결해주시긴 했지만, 워낙 본업이 기계와 관계없이 사람의 힘으로 손수 해내야 했던 분들이신지라, 신문물을 빨리 흡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그 활용에는 영 취미를 붙이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학교 컴퓨터 실습 시간에 다양한 활용 능력을 배우고, 친구들과 경쟁적으로 실력을 쌓아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노는 것처럼 다양한 지식을 쌓아 나갔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정말 어쩔 수 없이 쓰셔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거의 컴퓨터에 손대지 않으셨습니다. 자연히 두 분과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친구들에 비하면 다분히 보통 실력에 불과했던 저는 부모님의 눈에 ‘컴퓨터 천재’로 보이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원하는 지식이나 화상 자료 등을 뚝딱 찾아내고, 멀리 있는 사람과도 의사소통하면서, 복잡한 사이트 가입 절차에도 간단히 응할 수 있는 제 능력이, 부모님에게는 ‘관련 진로에 내보내도 되지 않을까’ 선망을 품게 하는 원천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제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부모님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기분이 무척 떨리고 설레, 차츰 그 기대에 맞춰 저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대단한 실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보다, 부모님이 모르는 사이 저를 재빨리 성장시켜 그에 부응해 가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빵집 주인 꿈을 이룬 아버지를 보며 자라다 복사하기
회사원을 하시던 아버지가 빵집 주인으로 직업을 바꾸시고 나서, 제 생활도 다소 바뀌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그만두고 동네 빵집 아저씨가 된 아버지의 선택을 놀라워했고, 호기심에 앞다투어 우리 가게를 찾아왔다가, 저렴한 가격과 솜씨 좋은 맛에 반해 금방 단골이 되곤 했습니다. 매일 이렇게 맛있는 빵을 먹게 되다니 부럽다면서, 자기 아빠도 빵집 주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한탄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빵은 성인 고객층을 타겟으로 한 비싸고 고급스러운 상품보다, 아버지 본인이 학생 시절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많은 달콤함을 맛보았던 저렴한 제품을 기조로 하여 구성되어 있었기에, 저와 같은 또래의 학생 아이들에게 금방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공부 잘해서 대학 가야 한다’, ‘대기업의 회사원이 되어 돈을 잘 벌어야 한다’ 등의 잔소리에 절어 지내는 처지였지만, 오랜 꿈을 성공적으로 이룬 아버지의 존재는 그런 우리 사이에서도 ‘자신의 로망을 끝까지 실현한 사나이’의 모범적인 사례로, 어른들이 끊임없이 권유하는 수입 좋고 안정적인 직장뿐만 아니라, 자신이 진짜 원하는 진로를 추구하더라도 얼마든지 삶을 영위해 나갈 근거가 생긴다는 희망을 품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아버지의 성공이 하루아침의 변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제빵의 꿈을 접고도 오랜 세월 나름의 상품 개발과 제빵 시장의 흐름을 분석하며, 업계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고 분투한 결과 완성된 성과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저 또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틀린그림찾기"를 통해 눈썰미를 키우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 제가 가장 자신 있던 게임은 ‘틀린 그림 찾기’였습니다. 기억력과 눈썰미가 좋은 저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놀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세한 차이를 인식하고 예전 기억과 현재를 비교할 줄 아는 저의 역량은, 외모에 관심이 많은 또래 친구들의 작은 변화나 행동의 차이를 잘 파악하여, 아이들의 호감을 사는 기반이 되어주었습니다. 남자들이 우스갯소리로 흔히 손꼽는 여자의 가장 무서운 말이 ‘오빠, 나 뭐 바뀐 거 없어?’라는 것처럼, 외모에 관심이 많고 자기를 꾸밀 줄 아는 여자애들은, 자신이 내디딘 작은 발짝 하나마다 세세한 변화를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머리 길이가 조금 바뀌었다거나, 장식이 달라지고 학용품을 바꾸는 등의 차이를 금방 구분해낼 줄 알았던 저는, 손쉽게 아이들과 친해지는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매일 만나는 친구들의 지나치기 쉬운 변화를 관찰하여 알아내는 것도, 제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놀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하루하루 똑같은 풍경으로 인식할 뿐인 일상이, 제게는 곳곳에 숨어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숨은그림찾기와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 대척점에 선 오늘의 일상을 비교하고,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관찰하는 놀이는, 새롭게 생긴 고민이나 일신의 변화로 인해 행동이 사소하게 달라진 친구들 또한 면밀하게 관리하여, 말을 걸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도, 그 아이가 어떤 외모나 행동에 특히 다른 사람과 다른 차별점과 개성을 가졌는지 캐치하는 눈썰미를 가지고 있어, 더욱 원활한 대화의 물꼬를 트는 포석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제각기 관심 가진 분야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 각도를 자세히 관찰하면 대화의 화제를 이끌어내는 일은 얼마든지 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충동구매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어린시절 복사하기
어린 시절, 동생을 이끌고 어머니를 대신해 장 보러 갈 때가 많았던 저는 항상 ‘충동구매’라는 적과 싸워야 했습니다. 물정 모르는 어린 동생이 사달라며 자꾸 들고 오는 간식이나 음식, 장난감은 그렇다 쳐도, ‘이번 기회가 마지막’, ‘할인 특가’ 등의 유혹적인 문구가 잔뜩 붙은 품목들은, 제 유일한 무기인 장보기 목록을 무력화시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강적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제 자율대로 항목을 변경하게 해주시는 너그러움을 베푸셨지만, 그런 유혹에 마구잡이로 흔들렸다가는 정해진 예산을 훨씬 벗어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은, 제가 꾹 참고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발휘했습니다. 비록 뒤에 따라오는 동생이 항상 자잘한 물건을 카트에 집어넣고, 사주지 않으면 집에 가지 않겠다며 응석을 부리는 등의 고난을 힘겹게 이겨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말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경험은 어린 동생까지 매달고 심부름을 가야 했던 어린애에게는 너무 지나친 유혹의 장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장보다 가깝고 어린애가 흥정에 휘말리지 않아도 적당한 퀄리티의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을 고려한 어머니는, 저와 동생을 언제나 마트에 심부름 보내시곤 했지만, 자제심을 끊임없이 가다듬어야 하는 나잇대의 제게는, 그것이 외나무다리를 걷기처럼 어렵기 그지없는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언제는 시식품의 풍부한 맛에 매료되어 홀린 듯 사 들고 오기도 하고, 동생 장난감을 사주느라 식료품을 제대로 사오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저는 차츰 쇼핑에 익숙해지고 유혹 또한 태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해, 과일과 채소를 고를 때도 좋은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구매에 대한 갖가지 노하우 또한 쌓이게 되었습니다. 저의 잇따른 실패나 초보적인 실수에도 아랑곳없이, 제게 자율권을 부여하시며 지속적인 기회를 줬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제가 미처 갖추지 못할 역량이었습니다.
친구들 덕분에 독불장군에서 벗어나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 부모님과 일가친척 사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해, 독불장군처럼 자랐던 유년기를 지나, 제가 사회에 섞여 들어갈 수 있는 일원으로서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더는 저 혼자서만 특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자꾸 자기 마음대로만 굴다가는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지낼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은, 지금까지의 인생이 정말로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들게 하기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 머릿속에 딱딱하게 굳어 저를 지배하고 있던 아집이 깨지고, 많은 자존심 싸움과 충돌을 거친 후에야, 저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친구들의 그런 자극에도 아랑곳없이, 저의 세계를 그저 독선적으로 굳혀갈 뿐이었다면, 지금처럼 다수의 친구들과 교우 관계를 맺으며 평탄하게 자라 일반인에 가까운 인생을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주위의 충고나 깨달음이 주어진다 해도, 결국 문제를 일으키는 본인이 마음가짐을 바꿔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일침을 가할 때는 가감 없이, 그러나 반성하고 같이 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할 때는 온화하게, 저와 어울리고 받아들여 준 친구들 덕분에 제 인생을 성공적으로 교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당근과 채찍이 적절하게 조화되지 않았다면, 저는 그저 자격지심에 주눅이 들어 비뚤어진 인생을 살거나, 남들과 어울리지 못해 계속 겉돌며, 모두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올바른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인간으로 남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독주택에 대한 꿈, 미래를 그려나가다 복사하기
부모님이 항상 로망으로 강조하셨던 ‘꿈의 집’에 깊은 인상을 받아,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더라도 항상 그 집의 외관이나 내부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와 비슷한 아파트가 대부분이었지만 빌라나 단독주택, 고급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등 다양한 건물에 사는 친구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저는 우리 집의 차이와 각기 장단점을 살펴보며 왠지 모를 흥미가 들곤 했습니다. 아파트에 살 때는 단독 주택이 그저 아름답고 공간이 풍성한 곳인 줄 알았지만, 자체적으로 돌봐야 할 공간의 범위가 더욱 늘어나, 주기적인 관리 없이는 분위기가 오히려 상할 수도 있고, 아파트처럼 양쪽에 다른 집을 끼지 않아 추위 대책에 항상 공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친구의 입으로 직접 들었을 때는 기분이 무척 색달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뭐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없구나.’ 만약 제가 부모님께 꿈의 단독주택을 지어 드린다면, 그런 점을 특히 보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메모할 때마다, 왠지 꿈의 실현이 지척으로 다가온 기분에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거 형태에 따라 사람의 생활양식도 달라진다는 점이 특히 저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간단하게는 주변 이웃 문제부터 소음, 주로 어느 쪽의 인테리어에 공을 들이는지, 다 같은 집이라도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각자 달라, 그와 같은 생활이 1년 주기로 반복될 때면, 어느새 인생의 차이도 상당히 벌어져 있게 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지어드린 집에서 어떤 인생을 사시게 될까?’ 그런 미래를 꿈꾸는 것도 제게는 나름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재물의 실체에 대해 늘 탐구하는 자세를 갖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의 제게 금융의 개념은, 돈을 은행에 들고 가서 저금한다거나 이자를 받는 수준의 기초적인 지식에 불과했습니다. 금전이라고 하는 것은 삶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로, 가끔 살다 보면 한숨이 나올 만큼 부족해지기도 하고, 어머니가 언제나 쌍수 들고 환영하시며 좋아하셨다는 등의 막연한 느낌만을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은 ‘만족할 만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가진 사람조차 ‘아직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고 말할 만큼, 사람마다 소유의 기준이 천차만별인 존재. 그러나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며 열망하는 것만큼은 분명한, 재물의 실체에 대해 저는 늘 탐구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살았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앞다투어 가지고 싶어 하는데, 왜 만족할 만큼 소유할 수 없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 때면, 저는 고민에 몰두하곤 했습니다. 제가 맛있는 과자나 음식을 먹을 때면, 언제나 동생과 나누느라 마음껏 먹지 못하는 생활이 아쉬웠던 것처럼, 재물 또한 온전히 나만의 소유로 들어오지 못하기에, 사람을 더욱 안달 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누구나 소원하는 만큼 가지게 된다면, 거꾸로 욕심이 없어져 다들 원치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저는 과자 공장을 하시던 친척분께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과자를 산더미처럼 가져다주셨던 기억을 때때로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동생과 서로 견제하며 하나하나 정확하게 분배할 필요 없이, 최대한 빨리 먹어치워야 상하지 않고 온전히 위장으로 씹어 삼킬 수 있는 과자들을, 뱃속에 양껏 채워 넣고 난 후부터 동생과 저는, 당분간 슈퍼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할 만큼 과자에 질려 버렸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돈이 부족하다,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어머니에게도 부디 그렇게 지칠 만큼 많은 금전이 주어져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공부는 딱딱한 교육이 아닌, 즐기면서 배우는 놀이처럼 이루어져야 한다 복사하기
공부는 딱딱한 교육이 아닌, 즐기면서 배우는 놀이처럼 이루어져야 한다. 어린 시절, 학습 진도가 남들보다 다소 느린 편이었던 저를 다양한 배움의 장소로 이끄시며, 열정적인 교육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철학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걸음마나 옹알이, 말과 한글을 떼는 수준이 느렸지만, 그것이 저의 장래 가능성까지 원천 차단하는 징조는 되지 않는다며, 어머니는 언제나 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무리하게 타인의 수준에 맞춰 가기보다, 제 속도에 맞게 올바른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어머니는 주변 어른들이나 친구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며 저를 다독이곤 하셨습니다. 제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왠지 성장이 느리다며, 수군수군 이야기를 늘어놓던 어른들의 걱정을 들으면서도, 제가 불안감을 덜며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어머니의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학교에 올라가서도 집중력이 떨어져 공부하기를 힘들어했지만, 어머니는 실험관찰이나 몸을 직접 움직이는 학습에서는 월등한 반응을 보여주었던 제가, 지루하게 지식을 주입해 넣으려는 학교 방식에 맞지 않을 뿐이라며, 저를 데리고 많은 체험학습 기회를 찾아다니셨습니다. 학교에서 역사에 대해 배운다면 박물관이나 전통문화 체험 활동을 시켜주시고, 수학은 몸소 과일을 사들이고 통에 물을 채우며, 저울을 달아 시연해 보이는 등, 단지 머릿속에서만 작용할 뿐인 지식과 현실의 괴리감에 힘겨워하던 제가, 구체적인 장면과 예시를 떠올리며 학습할 수 있게끔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그런 노력으로, 저는 다른 어떤 아이들보다 명확한 근거와 이해를 기반 삼아 공부를 성취할 수 있었고, 일단 분명한 개념을 확립하고 나자 남다른 성장으로 제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치밀한 계획을 짜서 실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복사하기
어린 시절, 저는 어떤 일이든 간에 치밀한 계획을 짜서 실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만우절 장난이나 사소한 속임수, 주변 사람을 놀리고자 하는 작전이라면 무엇이든 간에, 단순한 충동으로 가벼운 소동을 벌이는 수준을 벗어나, 최고 몇 달에 걸친 준비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저력을 발휘했던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런 제가 인생에서 가장 공을 들이고 다니던 시기는 바로 만우절 날로, 공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는 날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끼면서 오랜 계획을 짜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애의 단순한 장난 수준에 불과했던 일이, 제가 나이를 먹고 나서는 차츰 스케일이 커져,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장난기에 들이는 공이 너무 세심한 나머지, 친구들에게 간혹 배척받기도 했던 저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준 존재는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저의 며칠, 몇 주, 몇 달에 걸친 노력이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날 때마다 울적해 하던 제게, 세상에는 장난보다 훨씬 이루기 힘든 일이 있다며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을 하셨던 것입니다. 단순히 상대를 놀라게 하고 웃으며 끝날 뿐인 장난보다, 누군가를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감동을 주는 일은 훨씬 울림이 깊고 소중하게 남는 기억이라며 저를 부추기셨던 아버지 덕분에, 저는 처음으로 장난이 아닌 계획에 오랜 공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저로 인해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셨던 어머니가 첫 목표물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취향과 기호를 조사하고, 주변에서 구하기 힘든 선물과 연출하기 힘든 상황까지 구상해, 모든 장난에서 그래 왔듯 한꺼번에 그 존재를 드러내 보였던 날, 화내거나 허탈하게 웃는 대신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시던 어머니를 지켜보던 저는 마음 깊숙이 치밀어 오르는 감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소명, 가치를 깨닫다 복사하기
외모나 재능이 그 사람의 삶도 그대로 결정할까? 암컷을 꼬드기기 위해 화려한 외관이 발달한 공작새 수컷이나 다수의 수컷 동물들을 보며, 인간은 왜 암컷이 외모에 더욱 천착하여 수컷을 유혹하고 싶어 하는지 고민하는 등의, 다양한 호기심을 가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어느 하나 허투루 쓸모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다고, 많은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깨달았던 신념을 다시 돌이켜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비록 다른 아이들에 비해 뛰어나게 외모가 잘나거나 몸매가 날렵하지도 않지만, 그러므로 더욱 저만의 쓰임으로 작용할 수 있는 영역이 제게도 언젠가 주어질 것이라 열심히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생물의 외관이나 특성뿐 아니라, 물건도 그 쓰임새에 알맞게 디자인이 진화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무렵의 일로, 저는 살아 있는 존재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물건에도 나름의 소명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제 일상에 당연히 존재해 왔던 것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애썼습니다. 예전에는 막연히 살아 있는 생물에게만 부여됐으리라 생각했던 부분들이, 주변의 익숙한 풍경을 주의 깊게 관찰할수록 더 새로운 광경으로 제 눈앞에 펼쳐져, 저의 발상은 단순히 인간중심주의 사고에서 발달한 비좁은 생각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심코 사용하는 일용품 하나에도, 그 기능을 더욱 충실하게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많은 고안이 들어갔다는 의식을 하면서, 저는 차츰 우리 주변의 배경에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질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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