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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4,057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 복사하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남을 배려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태도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귀찮아하실 정도로 활달하고 말이 많았던 어린 시절의 저에게 늘 귀를 기울여주시고 친구처럼 대화를 해주셨습니다.

말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특히 대인관계에서 의사소통이 잘 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이 저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사람들을 대할 때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항상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고민상담사로 통합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친구들의 고민을 들으면, 그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생각해서 조언을 해주곤 했습니다. 친구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다 보니, 친구들이 때로는 농담 삼아 '언니'라고 부를 때도 있습니다. 제가 조언해준 것들이 친구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 경우도 있어서, 저는 친구들의 고민상담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적절하게 조언할 수 있는 능력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에서의 대인관계와 업무적인 관계에서도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와 장소에 맞게 복사하기
<때와 장소에 맞게>
무척 낙천적인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 숙제를 받아와도 집에 오면 잊어버리고 놀기에 바빴고, 학교에서 선생님께 야단을 맞아도 하하, 웃고 마는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니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받을 때마다 부모님도 걱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들고 발표를 했는데 그만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잘하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여 저는 친구들을 웃겼다는 것에 만족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수업 이후에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앞으로 수업시간에는 진지하게 임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듣고 집에 돌아와 방에 콕 박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고 낙천적이던 제가 시무룩해 있으니 부모님이 저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셨습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드렸더니, 부모님께서는 사람들을 웃게 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못하면 오히려 폐를 끼치는 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학교가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이 나누어져 있는 것은 수업시간은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공부를 하기 위함이고, 쉬는 시간은 친구들과 즐겁게 웃으며 놀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때와 장소를 구분하고 행동하라’는 가르침을 통해 저의 행동을 반성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상황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대범한 친구들을 만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다 복사하기
저의 불안하고 걱정 많은 성격을 리드해주는 대범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던 시기였습니다. 시대는 예전과 달라져, 옛날 기나라 사람처럼 갑자기 하늘이 떨어지는 상상을 한다고 해도 전혀 대비할 방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사회 안전망과 보험 등의 대비 수단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저의 불안감도 조금씩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보통 아이들에 비하면 겁이 많은 성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그런 저의 불안감을 달래주기 위해, “사고가 나도 함께 당한다”, “병원에 입원하면 같이 나을 때까지 놀면 되지” 등의 긍정적인 발상으로 저를 달래주었습니다.

불행이나 사고를 당하면 세상에 혼자 떨어져 영영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저의 불안은, 그런 친구들로 인해 조금씩 개선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다치거나 수술해 병원에 있는 상상을 할 때는 세상이 무척 힘들고 비참해 보였다가, 다친다고 해도 친구들과 병원에서 다 같이 어울리며 씩씩하게 지낼 생각을 하니 왠지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힘들거나 불행해지는 외로움이 싫어 끊임없이 우울한 상상을 하며 불안해했던 저의 증세는, 그렇게 친구들을 통해 나아지기 시작해,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과 유대를 소중히 하는 성격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불행을 겪더라도 함께 짊어지거나 서포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인생의 어떤 위기라도 굳게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람들끼리의 결속을 믿게 된 크나큰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던 스무 살 복사하기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던 스무 살>
저는 대학 진학과 함께 고아원에서 독립하였습니다.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였는데,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제가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대학생활은 저에게 사회생활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좋아하던 영어영문과로 진학을 하여, 보습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방학 때에는 수업을 더 늘였고, 틈틈이 기회가 닿을 때마다 중학생 영어 과외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공공부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대학 4년을 마치는 동안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습니다. 그런 철저한 시간 관리를 통해 공부와 일을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적 또한 잘 관리하여, 장학금을 받아 학비 부담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바쁜 생활 중에도 제가 한 달에 한 번 잊지 않았던 것은 제가 자란 고아원을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어강사로 번 돈으로 동생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준비했고, 갈 때마다 고학년 동생들에게는 학업을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저희 과 동기들이 저와 함께 고아원 방문에 동참해주었습니다. 먼저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동기들이 저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준 것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체력과 열정의 아이콘 복사하기
<체력과 열정의 아이콘>
학창시절 매사에 열정적으로 모든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주어진 일에 태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의 기본은 체력이라는 생각으로 학교 통학을 자전거로 하였고 웨이트트레이닝과 수영을 병행하여 꾸준히 체력을 키웠습니다. 덕분에 같은 동기들보다 뛰어난 체력을 자랑하며 시험기간에 잠이 부족해도 거뜬히 견디곤 했습니다.

군 생활에서도 이런 강철 체력은 주변의 부러움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체력테스트에는 항상 최고등급을 받았고, 이러한 체력 덕분에 내무반끼리 축구경기나 족구경기를 할 때에도 항상 우리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모든 분야를 다 잘하진 못하더라도 관심 있고 재미있는 분야에는 열정을 다 쏟았습니다. 기계를 만지고 개발하는 일은 제가 열정을 가지고 몰두할 수 있는 분야였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자기 관리를 꼼꼼하게 복사하기
항상 대내외적으로 자기 관리를 꼼꼼히 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서투르거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학창 시절에도 엄격한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지나치게 단호한 기준에 매인 제가 가엾어 보인다며 동정하기도 했지만, 저는 이미 지각이나 사소한 실수 등을 배제하는 확고한 자기 관리에 익숙해진 타입이었기 때문에, 빈틈없는 성실함으로 어른들의 호의를 살 수 있었습니다.

가끔 친구들에게 ‘사이보그 인간 같다’는 말을 들을 때는 조금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그런 사이보그 같은 철혈의 삶을 평생에 걸쳐 유지하신 아버지의 존재는 제가 존경할 만한 엄청난 존재감을 가지고 계셨기에, 저 또한 그 등을 닮고 싶다는 마음으로 차분히 노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안 그래도 사회에 나가면 제약이 많을 텐데 벌써부터 이런 굴레에 묶여 있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저를 여러모로 자유롭게 하기 위한 일탈의 시도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처럼 되지 못할까봐 난처한 기억뿐이었지만, 저를 위해 어떤 손해도 감수해주는 귀중한 친구들의 도움과 우정을 느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는 단단히 고삐를 죄는 생활이 당연한 아이었지만, 저와 분위기가 다른 다양한 집안 풍토를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며 저의 제한된 시야를 훨씬 확장시키는 계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배려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 복사하기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모두와 함께 존재할 수 있었던 대가족의 구성처럼, 반 전체를 아우르는 다양한 교우 관계를 쌓고 다 같이 어울리기 위한 노력에 매진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집안 일원 중에 혹여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직 제대로 여물지 못한 사람이 있다 해도 ‘가족이니까’ 서로를 돕고 포용했던 것처럼, 저 또한 반 아이들과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하고 챙길 줄 아는 태도로 조화로운 관계를 꾀했던 것입니다. 저는 제 옆에 머무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연을 중시하며, 모두가 하나 되어 즐거움을 향유하는 공동체 의식을 마음껏 즐기고자 노력했습니다.

친구들 중에는 친척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거나, 형제 없이 혼자 자란 세월의 영향으로 개인적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도 많았지만, 하루하루 떠들썩하게 흘러가는 모두와의 시간을 즐거워해주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나 관심사가 있으면 반 전체가 함께하고, 누구도 낙오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 챙겼던 기억은 지금도 제 가슴에 아름다운 색채의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며 무한경쟁사회를 권유하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생의 본분이라고 하는 공부보다, 청소년기 우리의 자아를 풍요롭게 해주는 교우 관계에 더욱 열성을 기울였으며,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아낄 줄 아는 사회인으로서 자라날 싹을 틔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벌레 학창시절을 보내다 복사하기
학창시절 대부분에 걸쳐 불리던 제 별명은 ‘책벌레’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마저 제가 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읽혀져, 나름 뿌듯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아직 일정한 성취를 이루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청소년기 시절에, 벌써부터 친구들의 인정을 받을 만큼 저 혼자서 풍부하게 개척한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면 성취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독서 퀴즈나 독후감 쓰기 대회가 있을 때도, 저는 실적을 위해 그 무렵에만 우르르 단기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친구들과 다르게, 항상 풍부한 독서량을 유지해온 템포로 어깨의 힘을 빼고 정진하여 대부분 상위권에 오르곤 했습니다.

부모님이 강요나 단기적인 채찍질로 제 인생의 방향을 정립해 주려고 하시지 않았던 것처럼, 저 또한 특정 분야의 우등생이 되기 위해서는 벼락치기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 게 아니라, 항상 가랑비처럼 몸을 적셔오는 일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자 할 때, 하루아침에 대단한 성취를 이루어내고자 욕심을 가지고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노력을 기울이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쌓이는 성과의 안정성을 믿고 즐기는 마음으로 차분히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금방 눈에 띄는 결과를 이뤄내겠다 안달 내는 사람들과 다르게 조금 먼 미래를 바라보되, 일단 목표로 잡은 지점까지는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도달하는 법을 일찌감치 깨우쳤던 것입니다. 이는 제가 빈말 대신 행동으로서 증명하는 신뢰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나이에 향유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겪으려 노력하다 복사하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공부에도 매진했지만, 친구와 함께 어린 나이에 즐길 수 있는 온갖 모험과 일탈을 고민하느라 바쁜 시기였습니다. 어른들은 대학만 가면 뭐든 이뤄진다, 그 때 가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하곤 했지만, 대학에 다니는 옆집 형이나 사촌 형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던 ‘그런 말은 절대로 거짓말이다!’의 교훈을 새겨 들으며, 저는 어른들의 말을 절대 믿지 않고, 어린 나이의 감성으로 향유할 수 있는 많은 사건들을 겪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끼리 용돈을 모아 바다 구경을 하러 가거나, 길거리 공연을 해보고 장사에도 도전해보는 등, 우리는 음주나 흡연 같은 불법의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겪어 반복된 일상에 협소해진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자 노력했습니다. 간혹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혼날 때도 있었지만, 그 분들이 바라는 대로 일상을 쳇바퀴처럼 돌리고 사는 햄스터가 되어서는, 크고 나서도 여전히 그렇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쳇바퀴를 벗어나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려 애쓴 시기였던 것입니다. 제가 날로 편견에 구애받지 않는 남다른 모험을 준비하면, 저의 친구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거침없이 숙박이나 사람 손을 빌리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실행력으로, 저의 발상을 현실에 구현해내곤 했습니다. 청소년기에도 우리는 참 좋은 콤비였던 것입니다.
돈의 존재, 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다 복사하기
부모님의 직업이나 집안 형편이 각기 다양한 친구들 사이에서, 인간이 모두 평등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맞지 않다고 깨달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기본 권리를 가지고 있고, 차별받지 않으며, 세상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고 가르치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였지만, 사람이 타고난 환경에 저마다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학창 시절의 아이들을 보더라도 충분히 깨달을 만한 사항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평등해지도록 노력’할 수는 있어도, 결코 교과서의 이상이 말하듯 같아질 수는 없다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서서히 깨닫고 있던 아이들은, 같은 교실 내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하는 격차에 대해 실로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워낙 유복한 환경이라 남과 자신의 차이를 의식할 겨를이 없어 그저 세상이 장밋빛인 아이가 있는가 하면, 말끝마다 ‘우리 집은 돈이 없으니까’ 하며 부유한 가정환경의 아이를 꺼리거나 부러워하는 아이,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쁘지도 않은 중간 지점에 다분히 만족하는 아이, 상당히 가진 것이 많은 환경이면서도 자기보다 더욱 윤택한 삶의 친구를 부러워하는 아이 등, 어른들이 마냥 순수할 것이라 생각하는 학창 시절에만도 금전의 차이가 주는 삶의 역학 관계는 상당히 적나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이에서 돈이라는 존재가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그 사람의 품성을 달라지게 하는지에 대한 위력을 조용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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