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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정 (3,79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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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믿는다! 복사하기
<너를 믿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부모님께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부모님께 여쭈어보면 제가 기억도 못 할 갓난아기 때에는 울고 떼를 쓸 때마다 혼냈다고 하시지만, 제가 조금씩 세상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제가 잘못을 저질러도 부모님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무슨 생각이 들어?’, ‘선물을 받으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등등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도 부모님이 늘 대화로 제가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도록 교육해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교 시절 몸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픈 적이 있었습니다. 누워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학교 수업을 빠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파도 학교에 가서 엎드려있자!’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학교에 나갔습니다. 그럴 때에는 부모님께서 먼저 어떻게 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고 늘 저의 판단에 맡겨주셨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에는 희망하는 대학이 입학하지 못해서 재수하면서 방황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재수 시절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였고, 그 결과 학과 수석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도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듣는 응원의 말은 ‘너를 믿는다!’입니다. 이 말은 제가 힘들 때마다 용기를 내어 더 나아갈 수 있는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하고, 저를 야단치고 싶을 때 부모님이 가장 힘들게 참고 하시는 꾸중의 말씀이기도 하였습니다. 저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 있는 말씀이기에 그 말씀의 울림은 큰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저의 판단을 믿고 맡겨주셨기 때문에 저는 자라면서 점점 더 제 판단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꼈습니다. 저의 판단이 틀렸다고 해도 부모님은 그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 있으면 된다고 저를 위로해주셨습니다.
시장은 놀이터 복사하기
<시장은 놀이터>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시장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에 시장에서 다양한 물건들이 판매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시장은 어린 시절의 저에게 놀이터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제가 혼자 시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셨는데, 그런 이유로 늘 동네 아주머니들이 시장에 가시는 것을 보면 어머니께 소리 질러 누구의 어머니랑 시장에 간다고 외치고는 아주머니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 원하는 것 뭐든지 가질 수 있는 보물섬 같은 곳이 어린 시절의 저에게는 시장이었습니다. 물건값을 깎기 위해 흥정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특히 옷을 파는 가게들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아저씨들이 아주머니들의 치마를 입는가 하면,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공간을 누비고 다니는 것이 재미였고, 시장을 놀이터처럼 뛰어다니다 보니 시장에서 오래 장사를 하신 분들은 저를 손주처럼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의 제 꿈은 시장에서 만둣가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시장에는 TV에 여러 번 소개되었던 유명한 만둣가게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항상 줄을 서서 만두를 사가는 곳이었습니다. 저도 어머니께 졸라서 자주 그 집 만두를 먹기도 했는데, 맛도 맛이었지만, 기차처럼 늘어서서 만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신기했고, 저도 나중에는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 만둣집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 하는 어린 생각으로 만둣가게 사장님을 꿈꾸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라면서 꿈은 많이 변하고 시장도 어릴 때처럼 뛰어다니지는 않지만, 무언가 사고파는 분야, 시장이라는 거대한 영역을 다루는 경제 분야에 대한 관심은 꾸준하였고, 그것이 제가 경제학과를 선택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열정 있는 삶 복사하기
<열정 있는 삶>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딱 이거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그림을 그리는 친구나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처럼 딱 튀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너무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고 남들이 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셨던 부모님은 늘 저라는 한 사람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려고 애쓰셨습니다. 꿈을 일찍 찾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준비를 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서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찍 꿈을 찾은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지, 그리고 현재 자신이 처한 조건에서 얼마나 열정적인 순간들을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경험하면서 나의 꿈을 찾으려는 열정이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삶이자 멋진 꿈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다가오는 주말, 다가오는 방학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동물원에 가는 것, 번지점프를 해보는 것 등, 제가 수첩에 적어보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들을 부모님은 충분히 경험할 기회를 마련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항상 현재를 열심히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그만큼 관심분야도 넓어졌고, 예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직업과 사람들의 생활도 들여다보는 기회들이 생겼습니다.

그런 성장 과정 속에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은 바로 이모가 사촌 동생을 낳았을 때 병원에서 처음 조카를 만났을 때였습니다. 이모는 변호사라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크면서 육아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던 상황에서 저희 어머니가 친정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셨습니다. 저는 꼬물꼬물하는 어린 아가와 함께 생활하면서 어머니로부터 일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복지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대학을 진학할 때에는 뚜렷한 목표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세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 복사하기
<세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
아이디어 하나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사람들의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부모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쳐주신 가치는 성실과 노력이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갈고 닦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가르침 덕분에 학교를 다니면서 지각 한 번 없이 성실하게 수업시간을 지켜왔습니다. 수업에 성실하게 임하니 좋은 성적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아르바이트했을 때도 성실하게 책임을 다한 근무태도를 인정받아, 그만둘 때에는 사장님이 계속 일해 달라는 것을 권유하셨을 정도입니다.

수도권에서 살았지만,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서 살아서, 부모님은 채소농사를 지으시며 요즘 흔치 않은 4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저는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맏이인 언니와 동생들 사이에서 갈등을 잘 조정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언니와 싸우기도 많이 했고, 부모님께는 둘째의 서러움을 자주 토로하며 투덜대기도 했지만, 성장하면서 언니와는 친구보다 더 절친한 자매 사이가 되었고, 동생들에게는 고민을 잘 들어주는 언니, 누나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부반장, 반장을 역임하며 리더십을 키웠습니다. 합창부에서 활동하며 6학년 때에는 부장을 맡아 활동하며 시에서 주최하는 합창대회에 출전하여 은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항상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겸손과 배려를 배웠고, 다양한 학교 활동을 통해 리더십을 배양하며 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성실함은 기본, 도전은 옵션 복사하기
<성실함은 기본, 도전은 옵션>
어린 시절부터 성실함을 강조하신 부모님의 교육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저는 학교에 가장 먼저 등교하는 학생으로 유명하였습니다. 가장 먼저 교실에 들어서면 창문을 열고 밤사이 교실에 갇혀 있는 공기를 내보내고 환기를 시키면서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교실이 어질러져 있거나 책상 줄이 어긋나면, 누가 보지 않아도 치우고 줄을 맞추었습니다.
이런 성실함은 대학생활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시험을 볼 때에는 항상 미리 공부하였고, 과제를 할 때에도 항상 먼저 완성하여 교수님에게 적극적인 자문을 구하면서 완성도가 높은 과제물을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저는 여러 가지 활동에 도전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만화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동아리 친구들과 대회에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중학생이 찾아가기에는 먼 곳이었지만, 물어물어 대회장까지 잘 찾아갔고, 낯선 곳에서도 실력을 잘 발휘하여 대회에서 입상하였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마다 의논 상대가 되어주셨고, 삶의 지혜가 담긴 말씀을 해주시며 제가 스스로 현명한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 결과가 잘 되든 잘못되든 선택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택에 두려움을 갖거나 실패한 일에 대해 낙담해 있을 때에도 그 상황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응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실패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 복사하기
<책읽기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
제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 어머니도 사회생활을 하게 되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가 어린이집으로 퇴근하셔서 함께 집으로 가곤 하였는데, 초등학교 때부터는 방과 후에 학원을 갔다가 집에 돌아가면 항상 부모님이 귀가하실 때까지 몇 시간씩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을 늘 미안해하시면서 제가 집에 돌아오면 읽을 수 있도록 매일 식탁에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어머니가 오실 때까지 어머니가 써주신 편지를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써주신 편지는 지금까지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유학시절에는 이 편지의 일부를 가지고 가서 힘들 때마다 꺼내 보면서 힘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시간에 차츰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어 초등학교 때에는 학교에서 독서왕에 뽑히기도 하였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독서기록장을 꼼꼼하게 작성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한 학생이었습니다. 특히 과학글짓기 대회에서는 미래 사회에 대한 글을 써서 대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책만 파던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운동회 때면 항상 달리기에서 1등을 차지했을 정도로 달리기를 잘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축구경기를 할 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경기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친하게 어울리는 친구들과 주말에는 축구시합을 즐길 정도로 축구도 좋아하였습니다. 외동으로 자란 탓인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며, 친구들과도 유쾌하게 소통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 대인관계가 좋습니다.
매일 건강하고 성실하게 복사하기
<매일 건강하고 성실하게>
건강하고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모님은, 성적에 대한 부담을 주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게으름을 피우거나 꾀병으로 학교를 거르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매일 건강하게 등교하고, 수업시간에 딴짓 하지 않고 성실하게 수업에 임하고, 하교해서 숙제하고 즐겁게 뛰어노는 것’이 부모님이 원하시는 전부였습니다.
때로 숙제를 안 해서 꾀병이라도 부릴라치면 부모님이 먼저 아시고 ‘혼나더라도 학교는 가야지!’라고 으름장을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남매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개근하면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마쳤습니다.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 꿈일 정도로 어렸을 때에는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운동은 수영과 배드민턴이었습니다. 제가 7살 때 동네에 부담 없는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민체육공원이 새로 건립되었습니다. 수영장과 실내 배드민턴 경기장, 잔디가 깔린 야외 축구장과 야구장 등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버지와 배드민턴을 즐겨 하곤 했는데, 실내 배드민턴 경기장이 생기면서 4계절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대표 출신의 강사에게 일주일에 이틀씩 지도를 받을 수가 있어서, 저는 초등반에서 수강하게 되었는데 실력이 늘면서 재미가 붙어서 초등학교 때에는 선수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운동이 취미로 하는 것과 인생을 걸고 하는 것은 차이가 많이 있었기에, 가족과 함께 즐기는 스포츠로 활용하였습니다. 수영도 7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현재는 강사자격증도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축구, 농구 등 함께 즐기는 운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시간을 보내는 가장 즐거운 놀이가 운동이고 스포츠였습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건강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활동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좋아했던 수업은 미술 시간, 특히 공작시간이었습니다. 찰흙이나, 지점토 등으로 공예를 하는 시간도 좋아했고, 입체적인 작업을 하는 공작시간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집중하여 재미를 느꼈습니다. 이런 흥미가 성인이 되어 인테리어디자인을 하게 되는 단초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CEO보다는 과학반 복사하기

아버지는 사업 수완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사업 덕분에 저는 넉넉한 환경에서 부족함이 없이 자랐습니다. IMF로 인해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사업에도 타격이 있었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회사를 탄탄하게 운영해오셨습니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주식이 곤두박질치던 그 위기를 잘 극복하여, 오히려 한 단계 크게 성장하는 계기로 만드셨습니다. 그 때를 기점으로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회사는 중견기업으로 규모도 커지면서 아버지는 제가 경영학을 전공하여 CEO가 되기를 기대하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는 장래희망을 ‘사장님’이라고 쓸 정도로 아버지의 기대에 잘 부응하는 아이였지만 성장하면서 차츰 사업보다는 과학에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과학반에서 활동하면서 학교 실험실에서 큰 비용 없이 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을 하면서 화학과 물리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졌습니다. 특히 한강과 청계천, 그리고 화장실 변기 속 물 등을 수집하여 화학반응을 통한 수질오염 정도를 실험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과학선생님을 통해 친구 분이 근무하시는 교통환경연구소를 방문하여 대기오염 배출량을 측정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자동차 배출가스 및 측정 장비들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공익광고에서나 보던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하여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체험이었습니다. 과학이 우리 삶의 다방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지만, 지구의 환경을 구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도서관을 밥먹듯이 드나들던 아이 복사하기
어린 시절, 저는 도서관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아이였습니다. 도서관 사서 일을 하시며 저를 자주 데리고 가셨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저는 떠들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는 법을 어릴 때부터 터득한 타입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얌전하고 착한 애가 다 있는지 모르겠다고 어른들이 칭찬하실 때마다 왠지 뿌듯해질 만큼, 저는 도서관에서 많은 이용자들의 책을 찍어주고 정리하며 바쁘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책 읽기를 즐겨하곤 했습니다. 집에서도 독서가 항상 생활화되어 있던 부모님 덕분에, 저 또한 자연스럽게 그 옆에서 그림책이나 저학년 동화를 펴들고 앉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고, 부모님은 한 번도 ‘책을 읽어라’하고 제게 강요하신 적이 없었지만, 저는 어떤 투철한 독서 교육을 받은 친구보다 자발적으로 풍부한 독서량을 자랑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부담과 목적의식을 가지지 않고 책을 읽었지만, 매일 놀이처럼 반복된 독서는 자연스럽게 저의 독해력을 늘리고 지식을 풍부하게 해주었으며, 항상 기본 이상의 성적을 성취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제게는 장점밖에 없는 책 읽기였기 때문에, 가끔 부모님이 지나치게 독서를 강요해서 힘들다거나 책은 따분하고 재미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습니다. 저한테는 이만큼 쉽고 즐거우면서 저를 쑥쑥 키워주는 고마운 존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 부모님께 앞 다투어 독서 교육의 비결을 물었던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 또한, 한 번도 강요하거나 억지로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하시는 부모님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시곤 하셨습니다. 진정한 교육은 몸이나 머리가 억지로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배어들게 하는 것이라는 교육 철학을, 부모님은 항상 준수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잘난 소꿉친구를 둔 아이, 타고난 본분의 진리를 깨닫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 저는 옆집에 살던 소꿉친구와 죽이 잘 맞아 항상 어울려 다니던 사이였습니다. 얼굴이 잘생긴데다 사람을 묘하게 끌어들이는 카리스마까지 있어, 항상 아이들의 중심의 서 있는 인기인이었던 그 아이에게 저는 가끔 열등감을 겪을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저와 친구는 제가 계획을 짜면 그 아이가 남다른 실행력으로 원활하게 진행할 줄 아는 좋은 콤비였습니다. 저는 이것저것 신선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가 많아서, 가벼운 장난이나 거창한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계획을 짤 줄은 알았으나 구현시킬 힘이 모자랐고, 그 아이는 항상 뭐든 저질러 보고 싶은 모험심으로 안달이 난 타입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둘은 서로의 니즈가 상당히 잘 맞는 좋은 콤비였던 셈입니다.

담장 안으로 공이 넘어가는 족족 돌려주지 않던 동네 호랑이 아저씨를 골탕 먹이는 일이나, 동네 폐지 줍는 할머니께 친구들과 놀이처럼 가벼운 장사를 벌여 벌어들인 돈을 쥐어드리는 등, 어린애들의 장난과 기특한 선행을 오가는 제 유년기의 수많은 업적들에는 전부 그 친구의 존재가 함께 했습니다. 제가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해 난처해할 때나, 일을 구체화시킬 방도를 찾지 못해 헤맬 때마다, 그 아이는 타고난 호감과 발품 팔기 좋아하는 성격으로 거침없이 계획을 진행시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친구의 그런 카리스마와 결단력이 부럽기도 했지만, 친구가 가끔 제게 일상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저의 두뇌가 부럽다고 말할 때마다, 사람은 모두 자기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의 몫보다 자신이 이미 타고난 재능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무작정 질투하거나 남의 떡을 탐내지 않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타고난 본분을 지켜야 인생이 보다 순탄할 수 있다는 진리를, 저는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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