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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소개 (5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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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가치를 가르쳐주신 아버지 복사하기
<일의 가치를 가르쳐주신 아버지>
30년 넘게 한 직장에서 한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를 보며 성실함과 책임감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업무상 거래처를 만나고 새벽에 들어오신 날도 아침에는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셨던 강인한 아버지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성실한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말씀을 우리 형제에게 자주 말씀하셨고, 저도 자라면서 존경하는 사람을 아버지로 꼽았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저도 어른이 되면 그렇게 강한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버지가 명예퇴직을 하셨습니다.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퇴직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남의 이야기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정년까지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던 아버지의 퇴직은 의외였습니다. 두 형제 중의 막내로 저와 6살 터울의 형은 이미 5년 전에 은행에 취직하였고 저 역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퇴직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저희 형제는 그동안 아버지께서 충분히 고생하셨으니 어머니와 여행도 다니시면서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여유를 충분히 누리시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신체 건강하고 아직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나이에 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셨고 임금수준과는 관계없이 어떤 일이든 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께서는 구청에서 시간제로 근무하는 주차단속 일을 구하셨습니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고생하시는 것이 염려되어 가족들이 말렸지만,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무척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취업을 준비 중인 저에게 아버지께서는 본인에게 맞는 직장을 찾아 그 회사의 성장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회사의 규모가 크건 작건 그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스스로 성취감과 소속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성장해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좋은 직장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 하고 계신 일에서도 보람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하셨습니다.
늘 성실한 모습으로, 가족이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아버지처럼 저도 그렇게 성실하고 강한 남자로, 어른으로 직장생활을 하겠다는 각오로 귀사의 문을 두드립니다.
아버지께 배운 성실과 겸손 복사하기
<아버지께 배운 성실과 겸손>
저의 아버지는 저에게 성실함의 상징과도 같은 분입니다. 시내버스를 운행하시며 기분이 안 좋을 때, 몸이 편찮으실 때에도 결근 한 번 없이 30년 동안 버스 운전대를 잡아오셨습니다. 근무하시는 기간 동안 회사에서 연말에 시상하는 친절기사상을 5회나 수상하셨을 만큼 승객들에게 웃으며 친절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큰 사고 한 번 없이, 어르신들이 탑승할 때에는 반드시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운행해오신 아버지의 프로정신을 존경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첫차를 운행하실 때마다 그 이른 새벽에도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본인이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실 정도로 늘 겸손한 분이기도 하십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하는 모습이 가장 프로답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항상 원칙을 지키는 것이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아버지를 통해 배웠습니다.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셔서 어릴 때부터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책임감을 배웠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에는 제가 가장이라는 생각으로 동생을 돌보다 보니, 또래 친구들에 비해 성숙하여 어른스럽다, 듬직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남학교를 다녔던 중학교 때에는 반에서 미화부장을 맡아 게시물을 관리하고 선생님을 도와 교실을 단정하게 꾸몄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귀찮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제가 자진해서 맡았습니다. 학급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했던 일이었는데, 1학년 때 잘 해내어 2학년, 3학년 때에도 친구들이 추천하여 3년 내내 미화부장으로 책임을 다했습니다.

성장과정의 중요한 순간마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성실함과 배려를 실천하면서 저 역시 항상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성실한 청년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를 보완하는 형제 복사하기
<서로를 보완하는 형제>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20년 이상을 근무한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이웃과 나누는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동생과 연년생으로 성장하면서 틈만 나면 싸우는 말썽 많은 형제였지만, 아버지를 따라 주말마다 독거노인들을 방문하는 일은 빼놓지 않는 주말일과였습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어르신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법적인 한계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이 많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알게 되었고, 그분들을 돕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유치원교사였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는 어머니와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의 손길을 그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장남이기 때문에 동생을 잘 돌보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지만, 어린 시절에는 1살 터울의 동생과 부모님의 사랑을 두고 질투와 다툼이 많았습니다.

저는 승부욕이 강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에는 축구선수로 활동했고, 학급에서는 반장을 도맡아했습니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에게 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하다가 코뼈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때 동생이 하루 종일 울면서 제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제가 퇴원을 하고 완치될 때까지 제가 좋아하던 과자를 사주며 졸졸 따라다니던 동생의 모습을 통해 저는 비로소 가족의 존재를 새삼 느꼈습니다. 오히려 동생을 통해 우애를 배웠고, 이후에는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깊은 우정을 자랑하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동생에게 저는 자랑스러운 축구선수 형이었고, 저에게 동생은 마음 따뜻한 여동생 같은 아이였습니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마음이 넓고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여서, 승부욕이 강했던 저에게 항상 귀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성품을 많이 닮은 동생은 제 인생의 든든한 벗이자, 저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었습니다.
동생을 통해 포용력 넓은 배려의 가치를 깨닫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 저는 공부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었던 동생에 대해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며 성적을 쌓아나가던 형이었습니다. 다분히 보통 스펙을 타고난 저와 다르게, 동생은 호감을 사기 쉬운 얼굴에 훤칠한 키, 활발한 성격 등으로 어릴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동생이 유일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공부뿐이라, 저는 형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압도적인 성적 차이를 벌려놔야 한다고 다짐하며, 친구들과 노는 대신 문제집을 풀거나 시험공부를 하며 제 나름의 스펙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곤 했습니다. 또한 아무리 동생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쉬운 스펙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결국 지식을 훨씬 많이 성취한 제가 인생의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약간의 오만함도 있었습니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 저를 그릇된 아집으로 사로잡은 시기였던 셈입니다.

동생이 잘하는 운동이나 활발한 교우 관계에서도 눈을 돌리고, 그저 저의 존재 가치를 입증할 성적 쌓기에만 매달려 매진한 결과, 저는 전보다 높은 시험 점수를 받을 수 있었으나, 인생의 많은 즐거움을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친구들과 관계에서도 소홀하고, 다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오락, 인터넷 화제 자체를 ‘지적이지 못하다’고 배척한 결과, 저는 혼자만의 독선적인 관계에 빠져 누구와도 함께 공유할 수 없는 비좁은 세계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제 지식과 총력을 기울여 완벽한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조화로운 답안은, 단순한 실용성의 추구만이 아닌 모두를 배려하는 포용력 넓은 발상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터, 저는 모두와 어울리는 시간이 그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던 편견을 지우고 저를 활짝 열어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람을 관찰하는 시간을 좋아하던 아이 복사하기
부모님을 마주하러 찾아오는 수많은 손님의 얼굴을 보고 관찰했던 것처럼, 저 또한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다양한 면면을 슬그머니 관찰하며, 과연 외관과 행동에서 얼마나 내재된 의도와 지금까지의 인생을 짚어낼 수 있을지 골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직업 상담소를 운영하시며 구인·구직에 잔뼈가 굵으신 아버지는,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몸짓이나 얼굴, 표정, 목소리 톤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현재 처지를 얼마간 꿰뚫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순전히 심심풀이로 배운 관상의 위력이라며 자신의 솜씨를 겸손하게 여기셨지만, 그런 표면적 기술 이상으로, 아버지는 본능에 작용하는 직감이 무척 뛰어나셨던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구태여 시간을 들여 분석하지 않더라도, 사무실에 들어선 사람의 몸짓이나 자세, 인상이 주는 기시감이 과거의 어떤 구직자와 비슷한지 떠올리며 머릿속의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여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감이 어렴풋이 잡힌다고 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패턴을 근거로 미래까지 유추해,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다더라 하는 소문이 그와 정확히 유사해질 때면, 왠지 이상한 기분이 되어버린다고 말입니다. 그처럼 아버지와 같은 능력을 갖추고 싶어, 저는 제가 가장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주변 친구들의 얼굴을 관찰하며, 그 아이들의 성격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졌는지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말하자면 감각의 훈련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아버지의 낡은 작업용 장갑 복사하기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는 항상 낡은 작업용 장갑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손때가 묻고 꼬질대는 외관에 어울리지 않게 유리 케이스가 씌워진 장식이 이상해, 아버지께 저것이 뭐냐고 여쭈었을 때, 해주셨던 말씀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가 지금 회사를 처음 세웠을 때 쓰던 장갑이란다.” 작지만 알찬 회사를 꾸리시던 아버지가, 기계 몇 대와 사원 한 명을 데리고 회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규모로 시작하셨던 시절, 사업 규모가 커져 더는 현장에 직접 관여하시지 못하게 될 때까지 사용하시던 장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날 무렵 이미 현장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졌을 만큼, 작업복 대신 양복을 입고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에 익숙해지신 분이었지만, 그 장갑을 바라볼 때만은 언제나 그윽하게 그리운 눈길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의아해 “많이 낡았는데 왜 안 버리고 있어요?” 물었던 제게, 아버지는 아무리 지금 형편이 나아졌다고 해도, 힘들게 회사와 공장을 세우던 처음 시작을 잊지 않고 싶다면서 조용히 유리 케이스를 어루만지셨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단순하고 망각 또한 간편한 생물이라, 아무리 치열하고 열성을 다해 살았던 시절이라 해도, 이런 증거물을 남겨놓지 않으면 자꾸 그때의 기억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장갑이 이렇게 낡을 만큼 힘겨웠던 노동을 기억하며, 초심을 잊지 않고자 하는 결심으로 항상 눈에 띄는 곳에 장식해 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쓰던 물건이 낡으면 어머니가 새로 사주실 것을 기대하며, 두근거리던 시절의 저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감각이었지만, 그 말씀을 하시던 아버지의 눈빛이 무척 진솔하게 빛나고 계셨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의 말을 가슴 깊이 이해하며, 제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자신을 명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복사하기
자신을 명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어린 시절, 저는 남의 눈에 띄거나 돋보이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고 손을 번쩍 들어, 저를 표현할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제가 무척이나 선망하며 닮고 싶어 하던 언니 또한, 발표나 본인 존재감의 피력에 있어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 담대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잘난 척’한다느니, ‘선생님께 예뻐 보이고 싶어 난리’라느니 하는 아이들의 구설수가 따를 때마다, 어차피 덜떨어진 아이들의 시기 질투일 뿐이라며 당당하게 웃어 보이던 언니의 미소는, 반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묻어가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하던 저의 성격을 바꿔 놓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변 아이들한테 ‘나댄다’는 말을 들으며 혹여 따돌림이라도 받게 되면 세상이 그대로 끝나는 줄 알았던 어린애였지만, 언니는 그런 아이들의 영향력이 사실 얼마 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도, 항상 사람들의 중심에 서서 주목받으며 맹활약을 펼치던 언니의 삶은, 저로 하여금 괜한 겁부터 먹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했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거침없이 손 하나 들지 못하는 애들한테 어설픈 따돌림을 당해봤자, 인생에 하등 변화가 없다는 진실을 언니는 몸소 증명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언니를 지켜본 후부터 저는 ‘다른 아이들의 눈에 띄어 괜히 미움받지 않기 위해’ 제 몸을 사리던 버릇을 버리고, 어떤 구설수와 험담이 오가든지 간에, 저의 의견을 솔직히 드러내며 모두의 앞에 당당히 나서곤 했습니다. 저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물론 있었지만, 저를 좋아하고 주목해주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았기에, 저는 개의치 않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힘을 좋은 곳에 써야 한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 이삿짐 업체를 운영하시며 어떤 물건이든 번쩍번쩍 들어 올리시던 아버지의 듬직한 어깨는 제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가녀린 어머니를 훌쩍 들어 올리고, 마당에 놓인 갖가지 운동기구로 근력 키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시며,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 또한 직접 나르시는 괴력을 발휘하던 아버지의 수많은 모습은, 제 머릿속에 영웅과 같은 풍모로 아로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때 아버지가 슈퍼맨처럼 크립토나이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아버지의 힘을 신기하게 여기며 무척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멋진 남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버지는 남다른 힘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 힘을 타인을 위해 발휘하는 것도 주저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한때 역도나 운동선수의 꿈을 꾸기도 하셨지만, 직접 들어 올려 봐야 단순한 기록으로 남을 뿐인 물체가 아닌,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물건을 날라주고 싶다는 뜻으로 이삿짐 업체를 열게 되었다는 아버지의 포부는, 어린 제게도 무척 멋있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힘을 발휘하면서도 본인의 괴력을 과신하지 않고, 항상 충분한 몸풀기와 단련을 병행하시는 아버지의 겸손함 또한 제게는 승자의 여유로 비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근육이 멋들어지게 붙어 단련된 몸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매일 변함없는 운동 스케줄과 근력 단련을 꾀하시는 아버지 옆에서 저 또한 자연스럽게 운동을 시작했고, 피는 속일 수가 없는지 또래 친구들보다 상당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저를 무척 대견해 하시면서도,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아야 하며, 파괴나 자만보다 존중과 온유의 힘으로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늘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철학은 지금도 제 가슴 깊숙이 남아, 제 인생의 기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녀회장 어머니에게 사람 사귀는 법을 배우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 부녀회장을 맡고 계시던 어머니 덕분에, 저희 집 거실은 언제나 동네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사랑방이었습니다. 끼리끼리 친하신 동네 아주머니들 그룹이 로테이션처럼 돌아가며 방문할 때마다, 언제나 다과를 차려놓고 웃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는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무척 좋으신 분이셨고, 본인의 의견이 있다고 해도 쉽게 드러내지 않으시며, 항상 집단의 중심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무게중심을 유지하는 분이셨습니다. 이는 저를 대하실 때도 비슷한 훈육 과정을 거쳤습니다. 어리다고 해서 저의 의견을 섣불리 재단하거나 말을 끊지 않으시고, 인내심 있게 들어주신 다음 하나하나 짚으면서 스스로 깨달음을 유도하는 과정은, 어머니의 다정한 말투에 홀려 있다 보면, 어느새 막무가내로 뻗어 나갔던 생각이 얌전히 제자리에 돌아와 있는 신기한 현상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어머니는 세상에 말할 거리가 득시글한 수많은 이발사를 받아준 대나무 숲과 같으셨던 분으로, 어머니의 온화한 말투와 눈빛, 차분한 맞장구에 홀려 이야기를 술술 말하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매듭이 나름대로 마무리 지어져 있곤 했습니다. 또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항상 공평하게 대하면서도, 그 사람의 특징이나 취향을 고려하며 기억하고 챙겨주는 ‘모두를 향한 특별대우’로, 각자 자신이 더욱 신뢰받고 있으며 특히 돈독한 사이라는 ‘차별대우’의 착각을 들게 하는 기술이 대단하셨습니다. 수많은 아주머니가 저마다 ‘너희 어머니와 특히 친한 내가 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하는 식으로 제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잠시 흘려주실 때마다, 저는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들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바깥에 나가 돈을 버시거나 대외적인 활동을 하시지 않고, 그저 거실에서 남의 말을 늘 들어주셨을 뿐이지만, 아파트에서 돌아가는 상황 대부분은 어머니가 주도권을 잡고 계시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가려 뽑되 믿을 만한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하라 복사하기
제가 어릴 때부터 식당을 운영하시던 아버지의 철학은, ‘사람은 가려 뽑되 믿을 만한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하라’였습니다. 아버지는 사람의 성실함이나 일솜씨 따위를 신중하게 보는 대신, 일단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아낌없는 지원과 보상으로 보답해주곤 하는 타입이셨던 것입니다. 거래하는 재료의 질이 떨어지면 얼마든지 다른 판매상을 바꿀 수 있지만, 실력 있는 직원은 잃을수록 이쪽의 손해일 수밖에 없다며, 아버지는 인력의 소중함을 알고 아낌없는 투자로 존중하실 줄 알았던 분이셨습니다. 단지 금전적 보상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너그러운 편의를 봐주셨고, 가게에 오래 남아 성실하게 일한 직원들한테는 철마다 선물이나 보너스로 보답하시는 등, 제가 가게에 놀러 갈 때마다 늘 보던 직원분들이 하시던 말씀은 “이만한 가게 없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우리 가게만큼 음식 맛있는 데가 없지! 하고 뿌듯해 하곤 했지만, 사실 서비스를 비롯한 맛과 가게 운영 전반의 모든 장점은, 아버지가 ‘일개 식당이라도 평생직장처럼’ 꾸려가고 싶다며, 믿고 따라와 준 직원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세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직원분들은 너무 격식 차릴 필요 없다고 손사래 치는 아버지한테 언제나 정중한 예절과 존경으로 응대했고, 항상 자연스러운 웃음에서 우러나는 친절한 서비스와 운영이, 지켜보는 저한테도 무척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린 제가 그렇게 민감하게 느낄 정도였으니, 단골손님한테 미치는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평생직장’의 꿈을 바라시던 아버지의 소망은, 그렇게 믿음과 신뢰로 서로 탄탄하게 짜인 단골손님과 직원들 덕분에 영위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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