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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구성항목

성장과정 (3,79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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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기입장을 통해 기록하는 습관, 소비능력을 기르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부터 저희 집은 부모님과 저 모두 나름대로 용돈 기입장이나 가계부를 기록하며, 알찬 씀씀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극히 꼼꼼하신 성격의 발로였으나, 아버지는 그렇게 일일이 기록하지 않으면 ‘돈이 왜 없어지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런 두 분의 영향을 받은 저는, 내가 쓰고 받는 돈의 존재감을 명확히 알고 싶다는 욕구에서 처음 용돈 기입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마다 이유는 조금씩 달라도, 저희 가족은 사소한 영수증이나 금액 하나 잊지 않고 기록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던 것입니다.

때때로 저는 부모님 몰래 지나치게 비싼 물건을 사거나, 스스로 자랑스럽게 내보이지 못할 구매를 했다고 생각하면 슬쩍 금액을 낮추거나 물건 이름을 바꾸는 등의 은폐를 시도하곤 했는데, 부모님이 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들춰 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신 다음부터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러저러한 교훈이 있었다, 다음에는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마무리를 반성하며 넘어갈 수 있었던 일기와 다르게, 내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 무엇을 사들였는지에 대한 정보가 객관적으로 적혀 있을 뿐인 용돈 기입장은, 제게 일기보다 더한 무게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심코 불량식품이나 장난감을 사고 싶다는 욕구가 들다가도, ‘이것을 내가 용돈 기입장에 떳떳이 적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브레이크가 걸리곤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감추고 싶은 금액만큼 여기저기 지출과 수입 부분을 건드리며 조정하는 일은 무척 귀찮았고, 사지도 않은 물건을 대신 샀다는 둥 둘러대는 일도 무척 양심이 찔렸기에, 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솔직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제가 온전히 납득할 수 있는 소비만을 추구하곤 했습니다.
야구에 빠지며 얻게 된 수학적 개념 복사하기
책읽기에 빠져 있던 저에게 어머니는 야구 배트와 야구공을 쥐어주시며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친구들이랑 어울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구에 관심이 없던 저는 의아했지만 색다른 활동에 흥미를 느꼈고, 친구들을 모아 야구를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책에만 빠져 사회성 없는 사람이 될까봐 걱정하셨던 어머니께서 저에게 새로운 것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던 것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야구를 하면서 ‘이런 재미를 왜 빨리 몰랐을까.’라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그때라도 시작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야구를 시작하면서 야구 게임을 즐겨 보기 시작하였고 제가 응원하는 팀의 승률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확률 등의 수학적 개념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저는 수학에 재미를 느껴 열심히 공부하였고, 어느새 저는 수학을 제일 잘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는 ‘즐겨 일하면 그것이 곧 실력으로 드러난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을 즐기는 것 만큼 성공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즐기는 자세로 귀사에 업무에 임하여 실력 있는 인재로 인정받겠습니다.
변화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라 복사하기
‘변화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라.’ 아버지께서 제게 항상 당부하시던 말씀입니다.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야말로 발전 가능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말씀 덕분인지 저는 새로운 발상을 많이 하였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왜?’일 정도로 저는 궁금한 것이 많았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찾아보거나 직접 실행해 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기면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 의문이 완벽히 해결되어야 다음 일로 넘어가는 성격 때문에 일 처리가 늦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일에 대해서는 완벽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본에 충실하려는 태도로 생활하다보니 모범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변화에도 앞장섰기에 초·중·고 모범 표창장을 놓치지 않고 수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한 저는 한마디로 변화를 이끄는 창의적 사고와 모범적 태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同價紅裳 복사하기
‘同價紅裳’ 이 말은 합리적인 선택을 설명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물건을 고르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저는 제품의 실용성, 아름다움이 선택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제품의 아름다움을 많이 따졌습니다. 하지만 제품의 성능이 떨어지면 이러한 아름다움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제품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미적인 감각이 뒤쳐진다면 그것은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저는 제가 직접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패션 디자인 등에 관심이 있었지만 저는 패션보다는 가전제품 등 생활 속에서 많이 쓰이는 제품들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이제는 제품의 질 자체가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받지 못하고는 디자인이나 실용성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폰은 기능과 디자인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냉장고 등 생활 가전의 디자인이 중요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저는 감히 제가 ‘시대를 앞서가는 사고’를 가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사람 복사하기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는데 부모님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사람 안에 있는 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며 부모님께서는 제 안에 무한한 잠재성이 있고, 그 잠재성을 잘 이끌어내게 되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제게 큰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제 안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능력이 잠재되어 있기에 저는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저는 제게 숨겨진 재능은 무엇일지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는 저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보게 되었고, 제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을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제 자신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철학적인 사고를 시작한 저는 다양한 철학 서적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에 해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독립된 개체이기에 보편적인 것을 다루는 철학 책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저는 철학적 사고를 통해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문제 설정’을 통해 여러 방면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고 과정은 제가 다양한 사고를 통해 창의적 발상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위인전들을 통해 믿음, 추진력, 포용력의 가치를 깨닫다 복사하기
어릴 때 위인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위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일에 대한 믿음, 추진력, 사람들에 대한 포용이었습니다. 또 한 명의 위인을 꿈꾸었던 저는 이러한 공통점을 저 또한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위인들의 공통점을 유념하며 생활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은 넓은 아량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강조하셨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며 자신보다는 사회를 위하는 큰 포부를 가지고 살아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어떠한 일을 하던지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임하였고,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대와의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성장과정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형성된 생활태도가 제가 어느 곳에서나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바탕이라 생각합니다.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시절 복사하기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어렸을 때부터 활동적인 일에 많이 참여하였습니다. 학교 대표 육상 선수로 선발되어 전국 대회에 출전하기도 할 만큼 운동을 좋아하고 잘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현재 사회인 야구팀의 감독을 맡고 계실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십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기에 직접 참여하셨었는데 이제는 벤치에 앉아계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릴 때 저는 아버지와 함께 체력단련을 위해 학교 운동장을 아침마다 10바퀴씩 달렸습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느낌이 왠지 좋았습니다. 그 한계를 참고 넘기는 그 기쁨은 당사자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듯 어렸을 때부터 다져온 운동능력이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도 끄떡없는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촬영 작업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기에 철야작업도 많았지만 저는 ‘에너자이저’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강한 체력을 자랑했습니다. 저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활력은 미디어 종사자에게 있어 큰 장점적 요소라 생각합니다.
조경사업으로 바뀌는 동네를 보며 꿈을 갖다 복사하기
중학교 때 이사 간 동네에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조경 사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집 아래쪽으로 건천이 있었는데 그 곳에 인공적으로 물을 흘려 하천을 조성한다는 공사 설명을 보고 처음에는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굴삭기 등 중장비들이 연일 공사에 투입되었고, 그런 중장비를 볼 기회가 없었던 저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1년 후 저희 동네는 하천이 흐르게 되었고, 인공 폭포가 생겼습니다. 기술이 자연을 만들어내는 마법에 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처음 이사 갔을 때 삭막하던 주변이 이제는 동네 주민들이 즐겨 찾는 지역 명소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철마다 계절에 맞는 꽃을 심고 나무를 심으면서 녹음이 짙은 숲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삭막하기만 한 도심 한가운데 만들어진 이 공간은 잠시나마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의 기억이 지금 제가 이 일을 맡아 해보고자 하는 동기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복사하기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부모님은 늘 강조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상대를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제게는 여동생 3명과 남동생 1명이 있습니다. 아마도 맏이로서 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려하고 우애를 돈독히 하라는 뜻에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는 큰 다툼 없이 우애 있게 자랐는데, 무엇이든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동생들을 먼저 생각하는 저의 마음과 그러한 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저를 먼저 챙기려는 동생들의 마음이 이루어낸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성장과정에서 맏이로서의 책임감과 모든 것을 사랑으로 포용하고 감쌀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5남매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삶은 어떨지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이러한 호기심으로 저희는 지구본, 세계지도를 보면서 각 나라의 수도, 국기를 외우고 서로 퀴즈를 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일까요? 저희 5남매는 모두 외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동생 둘은 현재 호주에서 유학중이며 다른 한 명은 여행 작가로 활동하며 세계 각지를 다니고 있습니다. 남동생은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며 국제 비즈니스맨으로 활동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귀사에 입사하여 전 세계의 하늘을 누비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세 복사하기
제 자신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지만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 답답한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한번 생각에 빠져들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도대체 제가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 것인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다보니 학교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지만 집에서는 반항적인 딸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모님의 별것 아닌 말에도 혼자 흥분하고 화를 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저는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여 당시 학급 반장이었던 제가 그 아이의 집에 반 대표로 문상을 간 이후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늘 밝고 쾌활하던 그 친구는 5남매의 맏이였으며 7식구가 생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허름한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학교에 다녔기에 우리반 누구도 그 친구가 그러한 상황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부끄러워졌습니다. 모자랄 것 하나 없이 부모님의 챙김을 받는 제가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그 친구는 어머니와 시장에서 생선을 팔기도 했습니다. 학원에 다녀오다가 우연히 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있는 친구를 발견하였고 오히려 제가 그 친구가 부끄러워할까 싶어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저를 알아보고 먼저 다가와 아는체를 하였습니다. 좀 더 친해진 후 저는 창피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의 대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가족을 위해 하는 일에 부끄러운 일은 없다.’ 저는 이 친구에게 당당하게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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