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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구성항목

학창시절 (4,05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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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마주하는 사람 복사하기
친구들의 말을 무조건 믿지 않아 가끔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제 판단으로 직접 경험해 보고 나서는 마음을 다해 동조하거나, 친구의 화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응하는 성격이었으므로,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는 솔직한 성격으로서 돈독한 우정을 다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한 바는 거의 믿지 못한다고 해도, 일단 몸소 체험하고 나면 누구보다 진솔하게 마음을 열어 깊은 흥미를 느끼는 성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벌어지는 온갖 신기한 풍경과 볼거리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저의 매일매일은 항상 즐거운 외출과 나들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가 이미 그 존재를 알고, 가슴 깊이 새겨버린 집 근처 반경만 뱅뱅 돌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직 개척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새로 알아나가는 것을 무척 즐겼기 때문입니다.

만일 세상에 떠도는 소문과 그 실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다수의 사람이 어떤 소문을 퍼뜨려도 절대 휘말리거나 굴하지 않고, 저의 입장을 내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물의 진짜 본질보다, 표면적인 모습과 다만 말로 전해질 뿐인 정보가 더 옹호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저는 경험으로 깊게 깨달았습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경험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넓은 만큼, 사람들이 직접 확인하러 오지 못하는 상황을 전제로 하고 거짓 위장을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고 말입니다. 저는 기회가 닿는 만큼 최대한 세상의 많은 진실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저의 주관과 의견을 똑바로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진실을 마주하러 주저 없이 떠난 트루먼과 같은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처세 노하우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 복사하기
어머니의 처세술을 가까이에서 알고 배우며, 저 또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였습니다. 어린 시절은 아무래도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싶은 욕망이 앞서는 나이지만, 저는 어머니의 신묘한 화법 덕분에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이 자신의 의도나 정보를 알리고 싶은 의지로 가득 차 있으면 그저 무한하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며, 저는 그 안에서 필요한 부분을 취할 수 있다는 특혜는, 제가 사방팔방 저의 생각을 알리고 싶다는 욕구를 꾹 누르고 타인의 말을 잠자코 들을 수 있게 하는 마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자기 뜻을 남에게 얼마나 전달하고 싶어 하는지, 몸으로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돌아가며 우리 어머니를 찾아오고도 더 말할 거리가 남아돌아 항상 입이 근질거리시던 아주머니들처럼, 제가 만난 어른이나 또래 친구들, 언니 오빠들 모두 ‘들어주는 존재’에 목마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딱히 저를 어필하거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지 않더라도, 그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안에서 상당한 입지를 차지하며, 제게 필요한 정보나 이야기를 취해 면밀한 계산을 해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타인에게 의사를 표현할 때는 훨씬 정제된 언어로 말을 전해, 제가 타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수많은 타산지석을 지표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목표를 위해 빨리 적응하다 복사하기
중학교 때까지는 비교적 사람 수가 적은 고향에서 풍요로운 자연을 만끽하며 자라길 원하셨던 부모님이었지만, 제가 차차 성장해 고등 교육이 필요해진 다음부터는 저를 도시로 유학 보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전문화된 커리큘럼 하에서 공부를 하고,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얻어야 하는 시절을, 본인들의 욕심으로 잃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에서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번화가에 사는 친척 집에 머무르며, 제가 살던 고장의 고즈넉한 공기하고는 판이한 도시의 생활을 매일 체감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가끔 놀러온 적은 있었지만, 가끔 여흥처럼 즐기고 내려가던 것과 아예 일상처럼 몸을 맡기고 매일 부대끼며 지내는 생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생활을 온유하고 충실하게 보내기 위해 애쓰던 고향 생활과 다르게,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재빠르고 하루하루를 가볍게 소비하기에 바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도시에 올라와 지나치게 빨리 지나가는 며칠을 보낼 때마다 현기증이 나기도 했지만, 매일 머무르며 살게 된 입장에서 예전 같은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야 제가 당연하게 알고 자란 고향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흔치 않은 것이었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향수병까지 들어 매일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저의 미래와 가능성을 위해 잠시의 이별까지도 감수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제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낭비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제게 펼쳐질 가능성을 탐색하느라 이리저리 시간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목표에 도달하고자 언제나 의욕을 불태우곤 했습니다.
어머니의 열정과 교육으로 기본을 다지는 공부를 하다 복사하기
초반에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느린 성장을 괴로워했지만, 어머니의 열정과 교육으로 점차 앞서나갈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해가 다르게 위로 올라가는 저의 발전에 놀란 아이들은, 제 노하우를 앞다투어 물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힘써주신 제 비결을 들은 다음에는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해주시지 않는다’고 좌절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저는 저보다 월등하게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학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스케줄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다른 아이들이 저보다 공부에 대한 의지가 충만하고 집중력이 높아, 그만큼 학원에 오래 머무르면서도 공부를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부러워했지만, 실상은 많은 부모님이 저의 어머니처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체험하며 지식의 기반을 다져주시기보다는, 학원을 무조건 신뢰하며 거기에서 마냥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만 하면 점수가 쑥쑥 올라가는 것이려니 여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딱딱한 공부를 학원에 가서까지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함께 학습의 기초부터 닦아 나가고자 노력하신 분이셨기에, 그렇게 온실에 내버려두기만 하면 성장이 보장되는 줄 아는 교육 방식을 상당히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저는 막연히 ‘남들보다 수준이 딸리기 때문에’ 학원을 못 가는 줄로만 여기고 있었다가, 어머니가 상당히 굳센 교육 철학으로 저를 도와주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감명을 받아 어머니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감동을 일으키는 이벤트를 기획하다 복사하기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고 웃음을 끌어내고 싶어, 오래 공들인 장난을 지망해왔던 저는 어머니를 처음으로 ‘감동’시켰던 작전을 계기로, 저는 치밀한 준비를 통해 사람들을 마음 깊숙이 작용하는 울림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많은 구상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더욱 재미있는 기억을 많이 만들고자 노력해 왔지만, 때때로 그것이 단순한 불쾌감이나 관계의 절연을 불러일으키는 악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놀람과 웃음이 아닌 감동과 눈물 측면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저녁 식사에서 놀라게 하는 장난 하나를 치더라도, 며칠에 걸쳐 시뮬레이션과 준비를 반복하던 저의 성격은, 누군가를 감동하게 하는 일에도 여전히 치밀한 기반을 닦고자 노력하는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대상이 어물쩍 흘리고 지나간 말이나, 과거에 대한 언급도 하나하나 머릿속에 담아두며, 사람을 더욱 자극받게 할 촉매로 활용하고자 노력했던 저의 성격은, 그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다가가는 서비스가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런 저의 노력은 장난에 한창 몰두하던 시절에는 ‘고작 장난에 이렇게까지 몰두하다니’ 등의 느낌으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했지만, 그 방향을 바꾼 다음부터는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해주다니’의 감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누군가를 빠져들게 하는 덫에 있어 다분히 신중한 성격의 사냥꾼이었지만, 덫의 성질을 바꾸고 나서야 비로소 제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제가 장난에만 몰두할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뿌듯함이기도 했습니다.
현명한 소비를 위해 노력하다 복사하기
꽂히는 바가 있다면 충동구매 또한 즐겨하던 친구들과 다르게, 용돈 기입장과 ‘소비 노트’를 꼼꼼히 작성하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소비 습관을 들이던 시기였습니다. ‘소비 노트’란, 제가 어머니 앞에서 제 니즈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인용할 만한 이유나 근거를 정리해놓은 목록으로, 자전거를 사고 싶다면 ‘친구들과 방학 때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했기 때문에’, ‘방과 후에 운동하고 싶어서’, ‘이 제품은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내구성이 높고 프레임이 가벼워 이동에 훨씬 용이하다’ 등의 논거를 갖추어, 어머니를 차근차근 설득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의 거점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이는 제가 다달이 받는 용돈에서 커버가 가능한 물건을 사들일 때도 비슷하게 적용되어, 저는 어머니 대신 제 자아를 납득하고자 하는 의지로,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하곤 했습니다. 외관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에, 남들도 다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으니까, 왠지 느낌이 팍 꽂혀서 등의 두루뭉술한 이유는 탈락하기 일쑤였고, 장기적으로 제게 실효성을 가지고 영향을 끼칠 만한 근거들이 줄줄이 달리고 나서야, 저는 그제야 느리게 응하곤 했습니다. 때때로 친구들은 자잘한 쇼핑 하나하나에 그렇게 머리 아픈 고민을 한다면 인생이 너무 지루하지 않겠냐며, 너무 샌님처럼 굴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저는 친구들의 방에서 충동으로 질렀다가 곧 흥미가 시들어져 방의 인테리어처럼 나뒹굴게 된 물건들을 볼 때마다, 저 혼자만큼은 현명한 소비를 하고 싶다는 결심을 굳히곤 했습니다.
회계 역할을 도맡는 사람 복사하기
친구들끼리 만나거나, 모임을 할 때면 언제나 계산과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회계 역할을 도맡곤 했습니다. 스스로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자청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남자아이들 특유의 적당주의와 ‘머리 아프니까 대충 넘어가자’ 정신이 혼합된 와중에 계산이 마구잡이로 흐트러져 가는 모습을 보면, 끝내 참지 못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구매 정보를 조금만 알아보기만 해도 많은 돈이 절약될 것을, ‘생각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적당하게 사들이는 쇼핑 자체를 저는 힘들어했기 때문입니다. 그 같은 경우가 반복되기 시작하자, 어느새 저의 이미지는 ‘능숙한 회계 담당’으로 자리 잡혀, 아이들은 무슨 일이 생긴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저를 통해 돈을 모으곤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기대를 받으며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을 가졌을 때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후회하기도 했지만, 차츰 그런 방면에서는 남보다 관심과 재능이 훨씬 많은 제 자질을 인식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면밀한 계산과 사전 정보 파악에 따른 현명한 소비를 해낼 때, 누구보다 각별한 기쁨을 얻었던 저인지라, 어쩌면 저의 길은 이쪽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소비에 대한 저의 열정은 그저 돈을 절약하고 싶어하는 마음가짐의 발로일 뿐이며,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능력이라고 여겼던 저의 마음가짐을 고쳐먹고, 관련 업종에 진로를 두어 꾸준히 노력한 결과, 저는 현재에 이르게 되는 계기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낯선 이방인으로 주목받다 복사하기
어느 한 곳에 진득하게 붙어 시간을 보내는 일 없이, 해마다 친구나 학교가 바뀌고, 때때로 나라조차 바뀌는 생활에 익숙해져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학교를 졸업하는 게 학력으로 인정될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전국 팔도를 돌며 학기 하나에 한두 번씩은 이사했던 것으로도 모자라, 부모님이 진지하게 계획을 짜기 전에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 가서 하루아침에 그곳의 학생으로 덜컥 떨어져야 했던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귈 수 있는 친구들은 얼마 없었지만, 어딜 가든 낯선 이방인으로 주목받는 일은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아이의 관심을 끌어올 수 있는 저의 포지션을 즐겼습니다.

가끔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 다니다 예전에 알던 친구와 소식이 끊어질 때가, 아마 제일 슬펐던 것 같습니다.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는 주소로는 한계가 있어, 메일 주소를 자주 교환하곤 했지만, 어느 날부터 답장이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제가 지금은 떠나온 곳에서 진득하니 뿌리를 박고 살아온 아이인 만큼, 다른 관심사가 생겨 여기저기 표류하고 다닐 뿐인 저를 잊게 됐으려니 생각하면, 제 또래 아이들과 저의 삶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의식을 하게 되곤 했습니다. 저는 낯선 고장에 가더라도 쾌활하게 저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살았지만, 때때로 한국이나 예전에 제가 살던 지방에서 지금 살고 있을 옛 친구들과 저의 판이한 위치를 보면, ‘내 삶이 그렇게 이상한 건가?’ 하는 번민이 들었던 까닭입니다. 사람에게 너무 정을 붙이지 않으려는 성격도 그때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조용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 복사하기
또래 아이들처럼 쉬는 시간만 되면 운동장에 나가거나, 학교 여기저기를 쏘다니지 못해 안달 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진중한 성격으로 누구보다 어른스럽게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무작정 몸을 움직이기보다 가만히 상념에 젖어 있는 시간이 길었기에, 다른 아이들이 무심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세상의 갖은 진리와 현상에 대해서도, 저는 심사숙고해 깊숙이 침잠해 들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성적 또한 상위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친구들은 제가 너무 활동적이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저의 우수한 성적을 보면서 지나친 반대나 만류는 해주지 못했습니다.

제 또래 아이들한테는 호기심이 넘쳐 몸을 주체할 수 없다거나, 활력이 남아도는 등 모두가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천둥벌거숭이 남자애’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으나, 저는 항상 그 정반대를 달리면서도 성적으로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노력했습니다. 남보다 풍부한 체력과 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다른 방면에서 열정을 다할 필요가 있음을 저는 항상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에 대한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면, ‘너무 얌전하고 똑똑해서 별다른 손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는 칭찬을 듣곤 합니다. 아마 너그러운 부모님 눈에는 뭐든 예뻐 보이실 따름이었겠지만, 주변 친구들이나 선생님한테도 한결같이 비슷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을 보면, 저는 ‘조용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이미지’로 나름의 성과를 충실히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제가 항상 어린 시절의 저를 의식하며, 현재 노력하게 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돈으로 친구를 사귀려던 나쁜 습관, 부끄러움을 느끼다 복사하기
초등학교 때 만난 친구를 계기로, 저의 바르지 못한 소비 습관과 올바른 교우관계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는 계기를 가졌던 시절이었습니다. 또한, 집안의 과중한 사랑과 친구들 사이에서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갭 때문에 차츰 삐뚤어져 가던 저를 바로잡아준 친구 덕분에, 모두와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아이가 되고자 노력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다른 아이의 환심을 사고자 준비한 선물이 처음으로 차갑게 거절당한 후로, 저는 오기가 생겨 그 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한 노력을 거듭했지만, 그 친구는 제 두둑한 용돈을 활용한 어떤 유혹에도 넘어오지 않다가, 제가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한 채 ‘그냥 너와 친해지고 싶다’고 울면서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을 때, 비로소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에게 친구라고 하는 것은 절대 금전적 관계로 얽매이는 사이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세속적 가치를 초월하는 사귐을 이어나갈 수 있어야 올바른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저와 같이 어울려 주기 시작한 후에도 저의 어떤 물질적 호의나 선물 공세도 거절하고, ‘돈이 아닌 마음으로 친구를 사귀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그 친구와 함께하면서, 저는 차차 제가 삶을 이어온 방식에 대해 부끄러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돈을 쓰지 않으면 어떤 아이도 곁에 남아있지 않았던 악순환의 반복에 대해 다시 되짚어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마음에, 어떤 정신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부모님의 돈을 이용해 손쉽게 끌어들일 수 있었던 얄팍한 교우관계에 대해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저의 소비행태에 대해 다시 곱씹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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