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폼 이력서·자기소개서

자기소개서 구성항목

성장과정 (3,793건)

전체 : 3,793건
페이지 : 5/380
제지산업에 대한 관심을 갖다 복사하기
저희 집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기 이전에도 언제나 그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는 했습니다. 밥먹고 아침부터 나가서 끼니때 아니면 집에 들어오지는 않고 해가 지면 들어가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 초등학교 근처에는 큰 공장지대가 있습니다. 그 공장지대에서 제일 큰 부지를 가진 공장은 제지공장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잘 몰랐지만 시대가 흘러오면서 환경오염과 같은 얘기가 자주 등장하게 되었고 공장의 청정기술 도입이 가시화된다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이 주변 환경을 악화시킨다는 얘기가 크게 오가고 동네 사람들이 시위를 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제지 공장에 대한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던 가운데 동네 환경을 많이 악화시켰다고 합니다. 동네 빨래가 아침에 널면 두 시간이 못가서 누렇게 변한다고도 하고 몇몇 아저씨는 폐가 좋지 않아 입원을 했다는 얘기가 들리고는 했습니다. 여러 잡음 끝에 동네 주민들과 제지 공장 사이에 중재가 이뤄져 7년만에 협의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우리나라 제지 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제지의 대부분은 재료만을 수입하여 재가공하여 역수출함으로써 국내 경제에서 상위권에 드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대부분 공장에서는 자체 오염물질 청정기술을 갖추고 있고 5년 전부터 외국에서 공장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지산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종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친환경 종이 생산에 관심을 가진 종이는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존경할 수 있는 부모님이 있어 행복합니다 복사하기
[존경할 수 있는 부모님이 있어 행복합니다]
초등학교 때 그런 숙제를 내 주셨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위인의 이름을 적어와라. 저는 그 당시 위인이라는 뜻을 잘 몰랐고 제가 적어낸 이름은 두 분이었습니다. 바로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함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먼저 발표를 했고, 그 친구들은 정말로 역사 속 위인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강감찬, 나이팅게일 같은. 하지만 저는 저의 부모님을 이야기했고 그 이유는 부모님이 살아가시는 그 방법 자체가 존경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저희 앞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으시고 항상 손해를 보시더라도 정직하게 살아가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저는 그 두 분을 존경했고, 그 두 분의 생활방식을 저절로 익히면서 자라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독립심과 생활력이 강했습니다. 복사하기
저는 어려서부터 독립심과 생활력이 강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혼자서 생활하기가 아주 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좋아합니다. 집에 있을 때 부모님께서 이것 하라, 저것 하라는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잔소리 할 것이 뭐가 있는지 뭔지 생각해보고 듣지 않도록 먼저 하는 스타일입니다. 저의 이런 스타일은 자영업을 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회사원으로 근무를 하시다가 뭔가 좋은 방향이 있는데도 의견이 수렴되지 않자 혼자 가게를 차려 일하는 것이 시간 낭비도 되지 않고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 생각하시고 작은 가게를 차리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혼자 일을 하시면서 그동안 생각하셨던 것을 착착 진행하며 좋은 성과를 얻게 되었고, 나중에는 가게 확장까지 하시게 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제게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먼저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 곁에서 자라서 그런지 언제나 먼저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Don't worry be happy 복사하기
[Don't worry be happy]
영어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저에게 알려주신 이 문장이 큰 힘이 되었고 그 때부터 영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본래 저는 육상선수로서의 꿈이 있었습니다. 달려라 하니라는 만화처럼 뛰기 시작하면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시름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부상이 잦았고 병원에 가서 구체적인 원인을 살펴보니 제가 평발 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뛰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인데 계속 뛰면 병이 생긴다니, 그 때 저의 부모님과 제가 느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께서 CM송이기도 했던 저 구절을 저에게 선물하셨습니다. 우리 딸은 한 번 이렇게 노력을 해 봤으니 다음 것도 이렇게 노력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말고 행복해지자,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공부하기 시작했고 영어가 좋아졌습니다. 그 때부터 영어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영어에 대한 지식을 높여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렇게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실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성실한 남자 복사하기
[성실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성실한 남자]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뛰어놀기를 좋아했습니다. 부모님 일도 안 도와드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잠자리를 잡고 벌레를 잡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다쳐서 들어오면 부모님께 혼이 났지만 그래도 재밌다며 나가 노는 그런 철없는 남자아이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뉘우쳤습니다. 부모님은 시장에서 떡집을 하셨는데 떡집 일은 사실 보통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계속 쌀자루를 짊어지고 다녀야 하며 떡을 밤새 빚어야 하는 일도 해야 하고 또 그것을 배달하는 일도 힘든 일입니다. 혹시라도 컴플레인이 들어오거나 양을 못 맞추면 밤샘을 하는 것도 잦습니다. 아버지께서 쌀자루를 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런 부모님의 노고를 깨달았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곧잘 했던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업 고등학교를 입학했으나 그 때 부모님의 자영업이 갑자기 안 좋아지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제지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며 하기 시작했습니다.
왈가닥이었던 여자아이가 철이 들 때까지 복사하기
[왈가닥이었던 여자아이가 철이 들 때까지]
남자아이보다 더 신나게 뛰어논다고 해서 제 별명은 왈가닥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여자아이가 저렇게 뛰어다닌다고 걱정하셨지만 제가 즐겁게 자라는 것을 보고 기특해 하시는 부모님이셔서 저는 걱정 없이 자라났습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해서 늘 사람을 챙겨주곤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선물해 주셨던 옷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오기도 일쑤였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친구가 추워 보였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옷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신발도 벗어주고 목도리도 벗어줘서 저는 맨몸으로 와서 감기가 걸린 적도 많았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저를 야단치기보다는 잘 했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준다고 하더라도 그 쪽 부모님이나 아이가 다시 돌려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사람에게 사랑이나 물건을 주면 꼭 돌아온다는 믿음 아래서 바르게 자라났습니다. 그러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부모님께서 고생하시는 모습이 보였고 저는 점점 왈가닥에서부터 철이 들어가면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또래보다 조숙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알찬 삶을 위해서는 계획이 필요하다 복사하기
알찬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계획이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당부하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저는 계획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는 무작정 계획을 세우라고 주문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고, 부모님께서 계획적인 생활을 하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알아가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셨고, 저는 자연스레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0년의 장기 플랜을 세우고 일 년 단위로 하위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이후 그 일 년을 채울 월별 목표를 구체화시키고 하루하루 그 목표를 향해 정진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저는 많은 시행착오를 하였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계획을 잘 세울 뿐 아니라 실천 또한 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계획과 실천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나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성공한 사람들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계획과 실천의 성공적 효과를 느낀 저는 이러한 좋은 것을 저 혼자 알고 있는 것이 아까워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의 인생 계획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화의 기술도 익혀야 했습니다. 무작정 자신의 인생에 끼어드는 사람을 반기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계발서 등도 많이 읽었습니다.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제 나름의 롤모델을 설정하였습니다. 제 롤모델은 바로 입니다. 라는 책을 읽고 그의 생활방식에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끈기 있게 몇 번이고 도전하는 그의 모습이 닮고 싶었던 저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며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꼭 해내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삶이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라" 복사하기
부모님은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뜻을 잘 알지 못하였으나 점점 자라면서 이는 제 자신이 부족한 면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고 배움에 정진하라는 부모님의 조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를 깨우친 저는 제 자신을 항상 되돌아보기 위한 노력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를 쓰며 하루를 되돌아보며 제가 놓친 것은 없었는지를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길지는 않지만 매일 꾸준히 저를 되돌아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지 않았던 해의 자료들도 가지고 계실 정도로 수집광이십니다. 서재에서 옛날 신문을 스크랩해놓은 것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습니다. 깔끔하게 오려 붙여 놓은 신문은 빛은 바랬지만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억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 하루의 소소함이 모여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던 만큼 제 일상은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짧게나마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하루의 감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반성하며 제 자신을 되돌이킬 수 있었고, 좀 더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는 가운데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이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삶에 있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제 자신을 완성시켜나간다는 마음으로 부단히 노력하여 회사에 도움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솔선수범의 아이콘, 남자중의 남자 복사하기
솔선수범의 아이콘, 남자중의 남자, 입니다.
축구부 주장, 학생회장, 학업이면 학업, 운동이면 운동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한다고 하면 해내는 남자중의 남자가 저를 설명하는 가장 짧고 확실한 수식어입니다.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은 늘 열심히 살고 어디 가서 기죽지 말라는 말씀으로 저희 형제들에게 용기를 심어 주셨습니다. 풍족하진 않지만 어디서나 기죽지 말고, 당당하라는 부모님말씀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누나를 통해 여성의 감성과 감각차이를 이해하다 복사하기
누나의 교정과 조련을 끊임없이 받아서인지, 여자형제가 없는 주변 친구들보다 여자에 대한 이해가 그나마 풍부하고, 수월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성격이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누나와 엄마 등 전반적으로 여성의 파워가 강하고 아버지는 ‘맞춰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 쪽이라, 저 또한 여성의 취향이나 의견을 존중하도록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밴 태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인지 솔로천국 커플지옥을 외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순탄하게 연애 경험을 거쳐온 저는, 한때 노하우를 가르쳐달라며 친구들의 노도와 같은 원성을 받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 그런 차이를 느낄 때는, 누나의 교정과 집안 가풍으로 인해 제가 얼마나 곰이 아닌 인간의 수준에 가까워질 수 있었는지, 감사의 마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섬세한 감성이나 미묘한 미적 감각의 차이를 이해하기에는 갈 길이 한참 먼 ‘그게 뭐?’ ‘난 똑같아 보이는데?’ 같은 친구들의 반응은, 어린 시절 제가 누나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해 ‘그게 뭐가 좋은데?’ 얼빠진 대답을 거듭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주변에서 자연스러운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남자들이, 얼마나 여자와 하늘과 땅 차이 같은 차이를 느끼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어, 누나의 교육으로 인해 여성의 감성을 일부나마 이해할 줄 아는 저의 능력이 남들과 차별화되는 특성으로 발현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기도 했습니다. 제가 여성 고객을 주류로 둔 현재의 진로를 택하게 된 것도 이때의 깨달음에서 기인한 원인이 컸습니다.
5/380 page
더보기 더보기
이전12345678910다음
서식/양식 1위 2018년 연간수위
저작권OK 인증 한국저작권보호원
콘텐츠 제공 서비스 우수 품질인증
서식제공 파트너
네이버
한글과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온라인문의 카톡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