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폼 이력서·자기소개서

자기소개서 구성항목

성장과정 (3,793건)

전체 : 3,793건
페이지 : 6/380
그림을 통해 안정을 찾다 복사하기
<그림을 통해 안정을 찾다>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세 자매 중 둘째로 자라면서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부모님의 관심을 받으려고 애쓰면서 길러진 것이 승부욕이었습니다. 동생이 생기기 전에는 막내라 귀여움을 독차지했는데, 3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나면서 관심을 빼앗겼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동생을 괴롭히기도 했는데, 성장하면서 부모님의 사랑에 차별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동생에게 더 잘 해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니와 동생보다 모든 걸 더 잘하고 싶어했던 저는 무엇이든 열심히 했습니다. 언니가 하는 것은 저도 다 하려고 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피아노, 태권도,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도 늘 부모님께 칭찬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항상 학원선생님께도 칭찬을 듣고, 학교 미술대회에서도 자주 상을 받으면서 자존감이 높아졌습니다. 부모님도 그림에 소질이 있는 저에게 자주 칭찬을 해주시고, 충분히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를 찾게 되면서부터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되었습니다. 언니와 동생에 대한 질투도 없어졌고, 자매들끼리 사이도 좋아졌습니다. 그런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정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서 몇 시간씩 그림에 집중하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질투도 많고 활달하고 집안에서 가장 시끄러운 아이였는데 그림을 좋아하면서 부터는 성격도 많이 차분해졌습니다. 성장할수록 자매들끼리 투닥거리지도 않고 우애가 깊어지는 것을 부모님께서 가장 좋아하셨습니다. 언니, 동생과 서로 좋아하는 분야도 달라지고 잘하는 것도 달라지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항상 자연을 접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셨습니다. 정서가 메마르지 않도록 자연을 체험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가족끼리 여행도 자주 했습니다.
책과 태권도 복사하기
<책과 태권도>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아이였습니다. 친구들과 놀러 가는 것보다 책상에 앉아 차분하게 항상 무언가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컴퓨터로 그것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찾아보고 정리하는 것을 재미있어 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컴퓨터 그만 해, 책 좀 그만 봐!'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새로운 것, 새로운 정보에 빠져 있었습니다.

너무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저를 걱정하셨던 어머니는 체력이라도 키웠으면 하고 보내주신 곳이 태권도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안 가겠다고 떼를 많이 썼는데, 태권도장의 사범님이 여자였습니다. 얼굴도 예뻐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사범님이 엄마 손을 잡고 겁에 질린 채 서있는 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사범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태권도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크게 소리도 지르고 체력도 향상되었고, 태권도를 오래 하면서 성격도 외향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함께 장난을 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고, 다른 아이들보다 키도 커서 어디서나 당당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입시학원에 다니면서 시간이 부족하여 태권도를 쉬게 되었지만,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 다시 할 만큼 좋아하는 운동이 되었습니다.
방대한 독서량과 뛰어난 체력 복사하기
<방대한 독서량과 뛰어난 체력>
어려서부터 제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방대한 독서량과 뛰어난 체력입니다.
중학교 체육교사인 아버지와 제빵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렸을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책을 읽으면서 상상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였지만,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것을 글로 표현하여 부모님을 놀라게 한 적이 많았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인 아이로 성장하면서, 교내 글짓기대회에서는 맡아 놓은 듯 항상 상장을 받았습니다. 특히 과학기술부에서 주관하는 미래사회 창작 공모전에 글짓기부문에 참가하여 우수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에 축구선수였던 아버지를 닮아 체력이 뛰어납니다. 운동을 좋아하여 축구나 농구를 할 때에는 친구들이 언제나 저와 같은 편이 되려고 싸울 정도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운동회와 중학교 체육대회를 할 때면 항상 대회의 꽃인 계주선수로 참가하였습니다. 반을 우승을 이끌기도 하였지만, 뒤쳐져 있을 때에도 늘 다른 선수를 따라잡는 스피드로 체육대회의 스타가 되곤 했습니다.

예전 친구들과 축구동호회 활동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다닌 적이 많았는데, 어린 시절에는 아이들끼리 축구를 했지만, 성장하면서 아버지 축구팀에서 함께 경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만 하더라도 10분도 채 뛸 기회를 주지 않으셨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체격이 더 좋아졌을 때에는 아버지도 적극적으로 팀원으로 받아주셨습니다. 또래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지만, 어른들과 축구를 통해 어울리면서 다양한 어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라 복사하기
<자신이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라>
안경점을 운영하시는 아버지의 좌우명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였습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일을 하건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일을 하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배웠습니다. 아버지스 스로 대단한 명예를 누리는 직업을 가지고 계시진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에서만큼은 항상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진 프로페셔널하셨습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가게를 지키셨습니다. 가게를 닫는 시간은 저녁 9시였지만, 단골고객들이 미리 요청하면 9시가 넘은 시간에도 시간 약속을 하고 기다려 손님을 맞으셨습니다. 자신의 일에 한 치라도 소홀함 없이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저도 자라면 아버지처럼 제 일을 사랑하는 프로가 되리라는 결심을 하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림에 소질이 있어 사생대회에서 곧잘 상을 받아오곤 했습니다. 따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색감이나 원근감 등을 잘 살려서 미술시간에도 선생님께 자주 칭찬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장래희망은 이렇다 할 것이 없었습니다. 화가를 꿈꿔본 적도 없고, 과학자나 연예인처럼 흔한 직업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장기에는 뚜렷한 꿈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했습니다. 연예인처럼 허황된 꿈이더라도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저와 비슷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비로소, 그런 부러움과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오는 불안함이나 조금함에서 꿈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저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국어선생님께서도 '꿈이 없다고 조급할 것은 없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늘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면서 살아도 충분히 괜찮은 인생이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충분히 위로가 되었고, 장래에 제가 무엇을 하든 아버지의 말씀처럼 제가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아이 복사하기
<정직하고 성실한 아이>
정직과 성실을 강조하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성실하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한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결근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한 번도 결석 없이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이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키도 크고 체격조건도 좋아서 초등학교 때에는 학교 농구부에서 활동하였습니다. 3점슛을 가장 많이 넣는 선수로 유명했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운동선수가 꿈은 아니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학업에 집중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농구는 저의 취미이자 특기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기분이나 성격을 잘 파악합니다. 초등학교 때 농구부원 중 후배 학생 중 하나가 실력은 좋은데, 팀에 적응을 잘 못하고 동기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 번은 그 아이를 데리고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소극적인 성격이라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하고 친구들을 사귀지 못해 고민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농구부 후배들과 자주 연락해서 그 아이가 동기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주었습니다. 동기들과 많이 친해지면서 팀워크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저는 동료들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여 동료들 간의 관계가 더욱 돈독하게 되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거래처를 대할 때에도 상대방의 기분이나 성향을 잘 파악하는 것이 업무처리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기 많은 꼬마자동차 복사하기
<인기 많은 꼬마자동차>
아버지께서 자동차부품판매 자영업을 하셔서 어린 시절에는 거의 아버지의 가게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유치원이나 학원을 가는 것보다도 가게의 자동차부품을 가지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할 정도로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었습니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의 자동차에 부품을 교체하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기도 하고, 아버지 곁에서 필요한 공구를 곧잘 가져다주면서 조수노릇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변 상가에서는 '꼬마자동차'로 불릴 정도로 어른들에게 인기도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아버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돈을 받지 않는 자원봉사에 가까웠지만, 아버지 가게의 단골손님들이 알아볼 정도로 아버지 일을 자주 도와드렸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상품을 관리하는 방법과 단골고객들을 잘 관리하는 아버지만의 노하우를 보면서, 아버지께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20년이 넘도록 가게를 잘 운영해오신 아버지의 노하우는 친절한 고객응대와 철저한 품질관리임을 배웠습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를 좋아하여, 방학이 되면 주로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대형마트, 물류센터에서 상품진열, 고객응대 등의 일을 하며 고객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유통매장의 활기찬 모습도 좋아했습니다.
시작하면 끝까지 복사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저는 충청북도 시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사과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1남 1녀 중 늦둥이 막내로 성장하였습니다. 누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렸고 상상력이 뛰어나 도에서 주최하는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누나의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책을 많이 사다주셨습니다. 저는 누나와 6살 터울의 늦둥이로 태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집안 곳곳에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 다양한 책을 읽으며 성장하였습니다. 덕분에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어휘력이 뛰어났고 이해력과 습득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주변에서 말을 잘 하는 아이, 똑똑한 아이, 공부 잘 하는 아이 등으로 불렸지만, 마땅히 장래에 무엇이 되겠다는 꿈은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국어 선생님의 영향으로 장래희망이 국어교사가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하여 책을 많이 읽었던 저를 많이 칭찬해주셨고,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소설이나 작가의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주실 때에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선생님을 좋아하고 국어를 더 열심히 하면서,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하여 칭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부지런히 과수원을 가꾸시면서 사과농사를 지어오신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끝까지 성실하게 해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런 가르침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려고 노력했으며, 주변에서 책임감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왔습니다.
특히, 중학교 때부터 국어교사에 대한 꿈을 꾸면서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그 꿈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였습니다.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성적은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 등등 처음으로 생긴 장래희망을 진지하게 저의 미래로 받아들이며 한 단계씩 준비하여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변함없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성실하게 달려왔습니다.
스스로 떳떳하게 복사하기
<스스로 떳떳하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게 일하셨던 부모님께서 늘 강조하신 것은 ‘스스로 떳떳하게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타인을 의식하고 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떳떳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멋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가지고 저를 놀려서, 구청에 소속된 환경미화원으로 평생을 일해오신 아버지를 부끄러워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치원을 다닐 때, 아버지의 직업을 소개하는 시간에 유치원 선생님께서 환경미화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 도시가 이렇게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며 ‘꼭 필요한 일을 하시는 멋진 분’이라는 말씀을 듣고 저도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무어라고 말해도, 선생님의 말씀대로 아버지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시는 자랑스러운 분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유년시절에는 방에 조립하는 장난감이 가득 찰 정도로 만들기를 좋아했고 잘했습니다. 몇 시간이고 조립에 집중하여 장난감을 완성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었을 때에 느끼는 성취감과 뿌듯함을 일찍 맛보았고, 그 재미에 더욱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꼼꼼하고 계획적인 성격으로 승부하는 총무형 반장이었습니다. 학급비를 관리할 때에도 철저하고 정확하여 선생님과 친구들의 신임이 두터웠습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가 들수록 취미와 적성이 더 분명해졌지만,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스스로 떳떳하라’는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춘천에서 프랑스를 꿈꾸다 복사하기
<춘천에서 프랑스를 꿈꾸다>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자연을 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산이 많고 호수가 아름다운 도시에서 관광지 음식점을 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사랑은 주시되 돈은 쉽게 주지 않으셨던 부모님은 일찍 경제관념을 심어주시면서 작은 일을 도와야 용돈을 얻을 수 있게 저희를 키웠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교육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제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접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가진 물건들을 소중하게 다루는 습관이 저절로 몸에 배었습니다.

한때 화가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는 프랑스 유학이 좌절되면서 꿈을 접고 춘천으로 들어와 식당을 운영하게 되셨습니다. 제가 자라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여유를 부리고 싶을 때에는 틈틈이 옥상에 올라가 주변 경관이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곤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께 종이와 연필을 내밀며 그림을 그려달라고 조르는 적이 많았습니다. 쓱쓱 연필이 몇 번 왔다 갔다 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어느새 멋진 그림을 완성한 아버지를 보면서 제가 어른이 되면 아버지를 프랑스로 유학시켜드리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 프랑스를 찾아보려고 지구본을 굴리곤 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고 싶은 꿈을 키웠습니다.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복사하기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어려서부터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돋보이는 글짓기 등으로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모형 만들기를 좋아하고 학교 대표로 과학경시대회에도 참가하여 수상하는 등 학교에서는 주목받는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절대 하지 않고, 때로는 재미없는 과목의 숙제는 하기 싫다는 이유로 숙제도 안 하고 학교에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싫은 것을 하느니 그냥 혼나고 말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엄하게 꾸짖어주셨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자신의 분야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미덕은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정말 하기 싫은 일도 감수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며, 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도 학교생활에서 숙제는 학생의 기본적인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의류 원단 수출업체에서 오랫동안 무역사무원으로 근무하셨던 아버지는 고소공포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잦은 해외출장을 가야 하는 무역사무원으로서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셨지만, 아버지는 스스로를 수출역군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부르시며 평생 해 온 일을 즐기는 분이었습니다. 비행이 싫지만, 아버지는 해외 무역 업무는 70세가 되어도 기력이 있으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씀을 하곤 하셨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일에 한 치라도 소홀함 없이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게 일해오신 아버지의 교육을 통해 하기 싫은 일을 다 안 하면 결국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생활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하기 싫고 힘든 일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피하기보다는 이것을 하고 나면 정말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해낼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6/380 page
더보기 더보기
이전12345678910다음
서식/양식 1위 2018년 연간수위
저작권OK 인증 한국저작권보호원
콘텐츠 제공 서비스 우수 품질인증
서식제공 파트너
네이버
한글과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온라인문의 카톡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