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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4,05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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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과에 대한 열정으로 조교생활을 하다 복사하기
학교와 과에 애정이 많았던 저는 진로를 고민할 때 공부하면서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께 조교추천을 받았을 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마다하지 않고 수락했습니다. 단순하게 조교가 교수님 심부름이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스스로 찾지 않으면 누구하나 챙겨주는 이 없는 대학생활에서 조교는 엄마 같은 역할을 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신입생들의 적응을 도와주고 학우들이 불편함 없이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손이 되어 주는 것이 조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저 시간이나 때우자는 태도로 임하는 조교들도 일부 있겠지만 제가 맡은 부분에서는 절대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마 이 역시도 일을 찾아서 하는 제 성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그맨처럼 활발하게 보내온 학창시절 복사하기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은 활발한 아이로 보냈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모두 활발하게 보냈고 제가 많이 까불었던지 ‘개그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공부를 하는 것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친구들과의 우정이 좋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희 반은 굉장히 돈독했는데 수학여행을 기획할 때 친구들끼리 객기로, 혹은 도전을 해보자 해서 고등학교부터 영종도까지 걸어가 보자고 했습니다. 수원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섬까지 걸어가는 것은 하루 종일 걸려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저희는 행군을 했고 마침내 이뤘습니다. 그 때 많은 선생님들께서 걱정해 주셨는데 저희는 힘들면 서로를 보듬고 또 부축하면서 마침내 이뤄냈습니다. 그 때의 희열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펑펑 울었습니다. 대학교 시절에도 저의 활발함은 빛을 발해서, 좀처럼 뭉치기 힘든 전문대학교 안에서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저희 동아리는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동아리였는데 함께 공부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시작하다 복사하기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시작하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절약 정신으로 저는 작은 제 소망들을 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단 회계과를 지원하여 수업을 받으면서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배웠습니다. 전산자격증과 회계자격증 그리고 컴활과 워드를 배우면서 배움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기타를 사서 배웠고 친구들과 함께 홍대의 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사실 자신감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홍대에서 연주를 하는 재미를 느끼고 나서부터는 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모아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을 다닐 때도 꼼꼼한 성격으로 수입과 지출을 미리 계획하고 가서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했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산수에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행을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세무회계와 관련된 일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과 1등으로 졸업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교수님께서 주변에 자리를 소개시켜 주셨는데 그곳이 제가 1년 동안 근무했던 세무사 사무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실제로 세무를 다루는 일을 배우고 또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 후로 시작된 나의 신나는 인생 복사하기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 후로 시작된 나의 신나는 인생]
고등학교 시절에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할 뿐 크게 자신감이 있거나 활동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영어 연극반에 들어간 후로 제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이런 연극을 누가 볼까, 왜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대와 조명 각본까지 각색을 하고 선배들의 책임감으로 완성되기 시작하는 연극에 제가 서서 다른 나라의 말을 하게 되자 그 성취감은 굉장했습니다. 그 때부터 어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활발한 성격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동아리에서 학회장을 하기도 했고 무대 위에 연극을 올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은 제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글로벌무역인턴십도 저에게 자신감의 원천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결과 최우수상을 받고 바로 협회에 들어가서 사무보조와 통역 일부터 시작하여 진짜 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는 정말 행복한 기분이었습니다. 마침 제가 일본어를 준비했고 중국어도 준비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프로젝트에 낄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제 인턴 기간이 끝난 것도 모른 채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례적으로 계약직으로 전환되어 1년 더 근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성격을 바꾸다 복사하기
[대학, 성격을 바꾸다]
저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성적을 얻는데 큰 무리가 없었고 대학도 무난하게 진학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활동성이 조금은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대학에 들어갔을 때 완전히 성격을 바꾸고 싶어서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웃고 술을 권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제가 원래 잘 웃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웃는 연습과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연습한 결과였습니다. 그 결과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학년장을 맡아 그 학년을 통솔하는 반장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학과에서 장학금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반도체학과에 들어가면서 저의 수준이 참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업과는 별도로 물리와 화학을 공부하는 학원을 끊어 공부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것이라 지루하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만들기를 좋아하고 돕기를 좋아하던 아이 복사하기
[만들기를 좋아하고 돕기를 좋아하던 아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했고 즐겼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 주시면 가장 먼저 해 가곤 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시고 선생님 한 분께서, 친구들이 함께 쓸 학습계획표를 만들어 보라는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정말 그 어린 나이에 밤을 세워 만들어 갔었는데 선생님께서 칭찬해 주시며 저의 작품을 온 반에 복사해서 돌려 그것으로 학습계획표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만들기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을 제 능력을 사용해 챙기는 것에 대해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학급미화를 도맡아 했고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선행상과 효행상을 도맡아 받았습니다.
배짱이가 아닌 개미의 마음으로 복사하기
[배짱이가 아닌 개미의 마음으로]
저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은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친구들과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하고 또 어울려 지내면서, 제가 느낀 것은 사람과 관계를 만들 때 배짱이가 아닌 개미 같은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활발하고 웃기고 세련된 아이가 눈에 뜁니다. 잘 노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재미있으니까 그 친구들과 가까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남는 친구들, 정말 제 친구가 되어주는 친구들은 근면성실하고 관계에 있어서 끊임없는 애정을 주는 관계를 만들 줄 아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들과 함께 의지하여 학창시절을 보내고 울고 웃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사람들에게 개미 같은 사람이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언제나 어디서든 겸손하고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였고 그 결과 많은 분들이 인정해주어서 대학 때 학과 회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도전과 경험이 전부였던 학창시절 복사하기
저의 학창시절은 도전과 그 도전으로 인한 경험을 쌓는 것에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도 타지 않아도 되는 버스를 타고 정거장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집과 학교가 가까워서 버스를 탈 필요가 없었는데 버스를 타는 친구가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다른 친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지만 저는 친구들이 매일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작정 버스를 탔고 신나는 마음으로 정거장까지 간 다음에 다시 집으로 왔습니다. 처음으로 한 그 여행은 지금도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면 가끔씩 기분 전환으로 하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해마다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처음에는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아침마다 운동하던 것이 제 체력의 한계를 파악하기 위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고, 다음 대회에는 제가 꼭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기 위해 출전을 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다른 사람과의 싸움이 힘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더 힘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싸우다가 힘들면 피하면 그만이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삶의 싸움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공부와의 싸움에 들어갔고 저는 승리하여 지금의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언제나 그렇듯 철저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생활을 하였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다른 곳보다 시급이 높다고 해서 도넛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공장은 도넛을 생산하여 각지에 유통하였는데, 그때 유통업무란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게 되었고 제가 만약 그 공장의 사장이라면 좀더 많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각종 행사업체에서 각종 홍보 및 고객 서비스 아르바이트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 아르바이트에서는 경영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진정한 서비스정신, 그리고 육체노동을 통한 인내심과 다양한 행사경험을 통해 고객 접점에서의 고객의 요구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홍보에 따른 마케팅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 능력을 기르는 것이 성공이 관건임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회계학, 생산운영관리학 전공을 통해 폭넓은 비즈니스 지식을 쌓다 복사하기
저의 학창시절은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기에 바빴던 것 같습니다. 그대도 그때가 예전에 아버지께서 사업에 성공하시고 풍족한 생활을 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지내기를 좋아해서 항상 친구 집에서 밥을 먹고 밤에야 집에 가고는 했습니다. 그때는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집에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바늘방석 같아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반 친구는 물론 학교에서 저를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모두가 정말 친해서 매일매일 밥걱정은 안하고 지냈던 시절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공부도 조금 했지만 집안 일을 많이 도와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시고 집안의 가세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제가 대부분의 집안 일을 다 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처음에는 금방 몸이 회복되셨는데 나중에는 몸져누우셔서 동생들을 챙기며 학업에 열중하고 집안을 챙겼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은 많아서 언제나 일이 생기거나 하면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도움을 받아 정신적으로는 매우 풍족하게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에 진학하여 회계학과 생산운영관리학을 복수 전공하며 폭넓고 전문적인 비즈니스 지식을 쌓아 올렸습니다. 회계학 공부를 하면서 재무, 관리, 원가, 세무를 중점적으로 배웠고 기업자본을 기록/관리하고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생산운영관리학을 공부하면서 SCM, Global Sourcing, 효율적 생산운영관리, 품질관리 등을 배웠고 원자재의 개발/구매로 시작하여 생산, 운송, 유통/판매 고객관리로 이어지는 Value Chain 내의 다양한 비즈니스 활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가게에서 사장처럼 손님들을 대하다 복사하기
저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의 가게에서 살다시피 하며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가 마치면 기다렸던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 가게로 갔었는데 시장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보며 지냈습니다. 동생과 제가 어렸기 때문에 장사를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저희들을 귀여워해 주셨고 손님을 대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냥 손님들이 신기해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어머니께서 바쁘셔서 제가 대신 손님들을 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저도 사장이라 생각하고 손님들이 좋아하는 취향이나 예쁜 옷을 팔기 위해 제 나름의 깜냥으로 옷을 팔기도 했는데 어느 정도 숙련의 과정을 거치자 옷을 파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공부에 전념해야 했기 때문에 학창시절에 더 집중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2학년 때 유독 저와 마음이 안 맞는 친구 때문에 불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말 한마디를 해도 부정적인 대꾸로 일관하는 친구였습니다. 저는 그런 친구가 너무 안쓰러웠고 친하지도 않은 친구처럼 겉으로만 대해도 됐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저도 불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나중에는 대화를 통해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차츰 그 친구도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하면서 친해질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게 된 점이 기뻤습니다.
대학에 진학 후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선배들의 말씀을 잘 배우려고 했기에 적응도 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학기를 남기고 휴학을 한 뒤 저는 직접 운영을 하고 싶어 인터넷 쇼핑몰 MD를 하였습니다. 그 때 많이 경험하고 배운 것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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