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폼 이력서·자기소개서

자기소개서 구성항목

학창시절 (4,056건)

전체 : 4,056건
페이지 : 7/406
해병대 생활을 시작하다 복사하기
[해병대 생활을 시작하다]
저는 군 생활을 해병대를 다녀왔습니다. 해병대도 굉장한 경쟁률이 있었고 제가 있을 때는 5:1이라는 경쟁률이었습니다. 저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열심히 준비했고 해병대에 합격하여 군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한 훈련과 생사를 오가는 이런 저런 상황에 당황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까지 공부만 하는 사람이었고 분명히 위계질서도 경험하고 몸으로 부딪치는 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이 있어도 이겨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에 맞게 좋은 선배님들과 후배님들 그리고 금쪽같은 동기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인드도 바뀌었습니다. 해병대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혼자서만 살겠다고 이기적인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혼자서 무엇인가 할 수도 없을뿐더러 팀 전체의 사기와 일을 망치게 됩니다. 그 때 저는 같이 살아야 하고 서로 도와야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담대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해병대를 다녔던 건축학도 복사하기
[해병대를 다녔던 건축학도]
주변에서 공공기관에 가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자로 태어난 이상 해병대에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해병대에서 군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협동과 위계질서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매일 몸을 움직이지 않고 혼자서 일을 하던 저는 협동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습니다. 군은 무조건 연대책임이고 해병대는 더욱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점점 군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서로를 챙기고 전우를 아우르는 것의 기쁨, 그리고 상사와 후배들과의 위계질서를 지켜서 일을 하는 법에 대하여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즐겁게 해병대를 전역했고 아직까지 그 친구들, 저와 동기였던 친구들과 연락을 하며 즐겁게 지냅니다.
모범적인 학창시절을 보내다 복사하기
[모범적인 학창시절을 보내다]
뛰놀기 좋아하고 활발했던 어린 시절 저는 중학교 때까지 계속 반장이었습니다. 공부도 곧잘 하는데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그것을 주도하는 것을 잘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 갑자기 큰 키도 한 몫 했습니다. 늘 또래보다 덩치가 컸기 때문에 더욱 친구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와서 사정 상 중퇴를 하면서 제지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3년 동안 일을 하면서 학교를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까지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저를 항상 예뻐해 주시고 챙겨주셨던 형님들과 함께 있으면서 사나이들의 우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콩 한 쪽이라도 항상 나눠먹고 서로 힘든 일이 있으면 돕는 직원들의 직원 애를 통해서 사람과 어떻게 나누며 살아야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한 번은 제가 때아닌 홍역을 앓아 일주일 동안 드러누운 적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만근수당을 받지 못할 뻔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 앓고 돌아와 보니 형들과 누나들이 제 수당을 채워주기 위해 일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느꼈던 감동은 잊을 수 없습니다. 저도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패, 성공,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도전 복사하기
[실패, 성공,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도전]
저는 보기 드물게 사수를 한 학생입니다.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목표하고자 한 대학이 너무 높아 계속 떨어졌습니다. 대학교 경영학부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항상 대기 번호를 받으며 아쉽게 떨어졌습니다. 삼수까지 하고 나서 또 떨어졌을 때의 실망감은 정말 컸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안타까워 하셨고, 친구들을 보면서도 나도 빨리 저렇게 대학생이 되어서 공부도 하고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사실 대학교를 갈 수 있는 성적이 아니고 운명이 아닌데 괜히 노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그런 저를 다독여주셨고 어머니께서도 다독여주셨습니다. 그 때 어머니께 매일 아침밥과 함께 편지를 받았는데 그것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결국 사수 끝에 대학교 경영학부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을 통해 제가 얻은 것은 실패도 할 수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도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실패를 하던 성공을 하던 일단 도전을 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며, 도전을 목숨 걸고 해 본 사람만이 실패를 통해서 다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때 이후로 항상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고 뒤늦게 입학한 대학에서 3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복사하기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저는 항상 잘하는 사람 쪽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래서인지 주눅이 들어 자신감이 있는 편에 속하지도 않았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편도 아니었고 미술이나 체육에 특기가 있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시키는 것은 곧잘 했고 어른께 순종인 면은 있었습니다. 위로 형님이 한 분 계셨고 부모님께로부터 항상 어른을 존경하고 형을 잘 챙겨야 한다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선생님 말씀은 잘 듣고 있었던 때,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서 유독 저를 예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학년으로 바뀌는 때 말씀하신 것이 저의 인생에 목표가 되었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시작이 미약해도 괜찮고 너처럼 한 가지를 시키면 끝까지 하는 친구를 보지 못했다면서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처음 했던 일은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는 일이었습니다. 아무 책이나 읽기 시작했고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독서왕이라는 상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자신감이 붙어서 활동적인 아이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때 반장을 맡았으며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 바로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던 학창시절 복사하기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던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친구들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사실 저는 정말 특별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처럼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친구들입니다. 노는 것을 좋아하기보다 공부하고 함께 노력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도 함께해 주었고 서로 모르는 친구들도 소개하여 저희들은 나름대로 큰 집단을 꾸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과 함께 소통하고 공부하고 또 발전해 나가면서 사람이 주는 행복이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 저는 공감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고객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그 서비스가 저에게 감동을 주었던 부분을 갖고 그 분에게 그 감동을 선사하려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관에 가서 내가 직원의 미소 때문에 즐거웠다면 그 즐거운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친구들에게 느낀 친절과 감사함을 고객 분들에게 전달해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해왔습니다. 복사하기
솔직히 공부를 잘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영어와 수학이 매력적인 학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련 서적은 썩 잘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매번 학교에서 3% 안에 드는 상을 받은 과목이 딱 하나 있습니다. 3년 내내 제가 우수상을 받았던 과목은 바로 일본어입니다. 저는 일본어를 참 좋아했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열심히 하니까 제 발음이 정말 일본 사람 발음 같다고 선생님께서 부추겨 주셔서 그랬던 것도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일본어를 더 열심히 했고, 고등학교 때 일본어 연극반에 들어 영화 ‘왕의 남자’를 연극화해서 일본어로 바꾸어 재현했던 적이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습니다. 한국과 외국 따지지 않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쉬는 날은 꼭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만큼 여행이 좋았고, 그래서 여행을 어떻게 다녀오면 더 재미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행비용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제가 목소리가 명랑한 편이라서 콜센터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기초적으로 받은 서비스 교육을 통해 고객님들과 어떻게 소통하면 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다양한 경험을 해오다 복사하기
저는 초등학교 시절엔 피아노 대회나 교내 일기장 쓰기 대회 등 예체능계 쪽에 소질을 보이며 우수한 성적을 받아 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에는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또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친구가 매우 많았던 시기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어떤 친구든지 주저 없이 친해질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쾌활한 성격 탓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게 가장 극대화 된 시절로 선생님께서도 저를 좋아하셔서 학생회 활동을 매년 하고는 하였습니다. 대학교 시절은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 등록비에 보탰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홀서빙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홀서빙과 같이 사람을 주로 대하는 직업에서는 매우 격식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제 스스로 깨닫고, 남의 일 또한 열심히 하면 내 일이 되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진심으로 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선은 어떤 사람이든 인연을 소중히 하라는 할머니 말씀을 생각하며 처음 보는 사람이나 매너가 부족한 손님도 이해하며 정성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차츰 저를 기억하며 자주 찾아오시는 손님을 뵙기도 해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 재학 시절 국제화 시대에 맞춰 어학의 필요성을 인지하여 항상 배우는 자세로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어학 실력의 배양에 최선을 다해 공부하였습니다.
마라톤으로 다이어트하며, 강인한 정신력까지 기르다 복사하기
중학교 체육 선생님이신 어머니는 저의 체력적인 부분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한 때 학습에 대한 스트레스로 살이 급속도로 불어난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살이 오르다보니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해졌습니다. 이러한 저를 보고 어머니께서는 마라톤을 제안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도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트레이닝 시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도록 하셨는데 저에게도 이를 제안하신 것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어머니와 함께 운동장을 달릴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어머니보다 훨씬 체력이 강할 것이라 자신했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첫날 운동장 5바퀴를 뛰고 주저앉는 저와 다르게 어머니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체육 교사인 어머니는 평소 체력관리를 꾸준히 해오셨고, 이것이 저와 어머니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이유였던 것입니다. 어머니께 자극을 받은 저는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하기는 하였지만 완주라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다이어트를 목표로 뛰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마라톤 완주에 대한 열망도 함께 커졌습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어머니는 ‘네가 여태까지 뭐든지 다 했다고 해서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 최선을 다한 것이 있느냐. 자만에 빠지지 마라’라고 채찍질하며 숨이 턱까지 차올라 포기하고 싶은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결국 저는 마라톤 완주에 성공하였습니다. 물론 다이어트도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완주의 기쁨과 다이어트 성공에 대한 기쁨은 물론 저의 강인한 정신력을 형성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된다.’라는 것을 입증한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저는 제가 하는 모든 일에 열정을 쏟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교육"을 생각해오다 복사하기
어머니 유치원에 가끔 들르며 아이들과 친해졌습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저는 교사는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등 유치원 선생님들을 돕는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때 느낀 것이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교육관을 가지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치원 커리큘럼 또한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저는 교육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교육 심리에 특히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학습 심리에 대한 논문과 서적을 기반으로 공부하면서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교육’의 수혜자로서 학습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동기 유발을 위해서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사회 단체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로 교육 봉사활동을 계획하였습니다. 교육학과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어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찾아볼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대학생 멘토’로 활동하며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도록 로드맵 형성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신들이 몰랐던 자신의 성향을 발견하고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며 변화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으로 뿌듯했습니다. 청소년들의 학습 동기를 유발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저희 활동은 프로그램 기획의 참신성과 진행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교육청장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수상을 목적으로 진행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7/406 page
더보기 더보기
이전12345678910다음
서식/양식 1위 2018년 연간수위
저작권OK 인증 한국저작권보호원
콘텐츠 제공 서비스 우수 품질인증
서식제공 파트너
네이버
한글과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온라인문의 카톡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