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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정 (3,79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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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작물과 동물들을 키우며 수확물의 가치를 알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 저는 단순히 애완동물을 키우기보다 생산물이 나오는 품종을 사육하며, 그로 인한 수확물에 기쁨을 느끼는 타입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개나 고양이를 선호하며 집안에 한두 마리씩 키울 때, 저는 흙 마당에 닭을 키우며 아침마다 달걀을 가져오는 기쁨을 누렸고, 토끼 부부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푼돈이나 장난감을 받고 분양해주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동물을 키우고 예뻐하는 재미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추가 수확물이 나올 수 있는지 어릴 때부터 가늠하는 성격이었던 것입니다. 물놀이를 하러 가더라도 꼭 물고기나 다슬기를 잡아오고, 바닷가에 가면 조개를 줍는 등, 어린 시절의 제 생산 활동은 실로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공짜로 생긴 물건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더욱 증대하기 위한 궁리에도 매진하곤 했습니다. 닭을 키우더라도 그저 보통의 사료나 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달걀노른자에 색을 내기 위해 다양한 색을 가진 먹이를 먹이거나, 벌레를 잡아와 먹이며 사료와 벌레 사이가 각기 달걀에 어떤 차이를 주는지 탐구하는 등, 공부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이며 지식을 쌓아가곤 했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관찰일기를 쓰기 위해 흔한 꽃 같은 작물을 키울 때도, 저는 반드시 열매가 열리는 식물을 선택해 단지 ‘키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먹을 만한’ 결과물이 나오도록 열과 성을 다해 보살폈습니다. 같은 작물을 키워도 그저 열매가 열린다는 수준에 만족해야 했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입으로 그 맛을 만끽할 수 있을 만큼 실한 수확물을 얻었을 당시의 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양한 영역에서 실적을 낼 수 있게끔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키운 수많은 작물과 동물들이 그 자신감을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경오염, 파괴에 대해 생각해온 어린시절 복사하기
어린 시절, 저는 인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며 자원 개발을 통한 환경오염이 극단에 다다르다 못해, 언젠가 인류 전체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울한 가설에 심취해 지내던 어린애였습니다. 세상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SF 소설이나 각지에서 벌어지는 동물 학살, 자연의 파괴, 예전의 아름다운 풍경은 온데 간데 없이 인간의 탐욕만이 넘치는 세상을 찍어놓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나의 미래는 제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자주 두려움에 떨곤 했던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자연스럽게 상상하던 친구들과 다르게, 저는 과연 우리가 어른이 될 때도 이런 환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남몰래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저는 그저 미래에 대해 장밋빛 꿈을 꾸기에 바쁜 친구들 사이에서, 저 혼자 암울한 그림을 그리며 나름의 어른스러운 느낌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생각 없이 매일을 살아갈 뿐인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저는 진심으로 미래를 걱정할 줄 안다, 우리의 삶이 온전히 지속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납득하고 있다 등의 감각에 취해 있던 저를 끄집어내준 사람은, 그런 저의 암울한 상상을 걱정하셨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할 줄 알기에 비로소 가치 있는 생물이며, 환경 파괴로 인해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한다면 지금 이렇게 그저 좌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미래를 어떻게 대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상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그 당시 심취해 있던 환경 파괴 이론과 온갖 충격적인 실태를 찍어놓은 사진을 같이 살펴보시고, 우리 인간 또한 과거의 오류를 수정하고 환경과 공생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자, 저를 데리고 봉사활동이나 환경박람회 등에 방문하셨습니다. 인간은 그저 나태하고 파괴를 향해 움직일 뿐인 탐욕스러운 생물이며, 그런 존재에게 이미 미래는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저의 우울한 편견을 수정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셨던 것입니다.
외모가 기준이 되는 세상, 도전으로 바꿔나가다 복사하기
어린 시절, 저는 외모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세상에 대해 도전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제가 타고난 외모가 그리 특출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다들 외모에 대한 선입견으로 사람을 대하거나, 편견으로 성격을 추측하는 세상의 흐름이 의아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씨가 곱지 않았지만 예쁘장한 얼굴로 누구한테나 사랑받는 같은 반 친구를 보았을 때는,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더 강해져서 나 하나만이라도 그런 세상과 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외모에 한창 관심이 많을 사춘기 시절에도 저는 그저 깔끔하게 수수한 차림만을 고집하고, 다른 친구들이 흔히 뚫고 다니는 귀걸이나 입술에 가볍게 발라보곤 하던 틴트 하나 구입하지 않은 채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남들의 눈에 예뻐 보이게끔 신경을 쓴다는 인상을 주는 행동 자체를 기피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친구가 “예뻐 보이려고 신경 쓰는 것 자체가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행동이라면, 네가 지저분한 인상을 주지 않게끔 보풀이 일어나거나 구겨진 옷을 입지 않고, 옷매무새를 깔끔하게 하는 것은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물었을 때, 저는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직 제 스스로의 자의식에 근거해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저의 노력이, 타인의 인상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외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이와 같은 의문은 제 가슴 속에서 본격적으로 피어나, 이후 제가 사람의 미의식에 대해 수많은 탐구를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지 외모지상주의의 영역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작동하는 시각적 메커니즘의 원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정에 충실해야 결과도 좋다 복사하기
<과정에 충실해야 결과도 좋다>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은 아이였습니다. 의사, 경찰, 컴퓨터프로그래머, 우주비행사 등 장래희망도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보거나, 학교에서 듣거나, 책에서 읽거나 박물관을 다녀올 때면 항상 장래희망도 따라서 바뀌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서 하고 싶은 동기를 물어봐 주셨고, 제가 이유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언제나 따뜻하게 지지해주셨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항상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게 하셨습니다. 다만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는 엄하게 꾸짖어주셨습니다. 약속에는 책임이 따르고, 지키지 않았을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약속할 때는 신중하게 하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결과로 평가를 받지만, 과정에 충실해야 결과도 좋다.’는 말씀은 아버지께서 한결같이 강조해온 가르침입니다. 결과에 연연하여 과정에 소홀하지 말고, 시작한 일은 끝까지 책임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일을 시작해도 먼저 성과를 내는 사람이 있고 나중에 성과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정이 제대로 되어 있으면 처음에는 성과가 늦게 나오더라도 이후에 일관된 성과를 보여줄 수 있지만, 깜짝 운이 좋아서 결과만 잘 만들었을 경우에는 토대가 없어서 다음에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조금 일찍 성공의 열매를 맛보는 것이 긴 인생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가르침을 따라 항상 과정에 충실 하고자 노력합니다.

저는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에는 그것을 이루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행동으로 옮기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나, 관심을 가진 일에 대해서는 찾아보고 뜯어보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 나갑니다.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처음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거나 미처 고려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는 큰 목표 달성에 차질이 없도록 빠르게 계획을 수정해갑니다.
활동적이고 자립심 강한 아이 복사하기
<활동적이고 자립심 강한 아이>
아버지를 닮아서 운동신경이 뛰어나 운동을 좋아합니다. 평일에도 저녁마다 가족끼리 공원 산책이나 배드민턴을 즐겼고, 주말에는 자전거로 장거리를 달리면서 대회에도 참여할 정도로 활동적이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체육대회에서는 언제나 학급이나 학과를 대표하여 나가는 선수였습니다. 운동은 저에게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자립심이 강한 아이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는 그것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꼼꼼히 체크하셨습니다. 갖고 싶은 것을 사는 데 필요한 비용 일부는 제가 부담하도록 하셨습니다. 설날에 받은 용돈이나 친척들이 다녀갈 때 주시는 용돈으로 부담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자립심과 책임감을 길러주어, 고등학교 때부터는 다양한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용돈을 스스로 벌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는 계획을 세워 몇 개월씩 저축하여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였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정말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니, 성취감도 느끼고 그 물건을 더 소중하게 다루게 되었습니다.

예의와 책임을 강조하셨던 부모님의 교육 덕분에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하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예의 바르고 활기찬 성격 덕분에 학교 단합 모임이나 동아리에서 학우들을 리드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학우들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였고, 친구들과 서로 도와가며 어려운 일도 함께 헤쳐나가는 협동심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으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으며 자신 있게 생활한 덕분에 어디에서나 그 조직을 대표하는 리더 역할을 하였습니다.
책임과 기회를 배우다 복사하기
<책임과 기회를 배우다>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을 강조하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께 자주 들었던 말씀이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이름을 걸고 책임져라.’는 것이었습니다. 시작하면 끝까지 마무리를 잘하고, 애매하게 하는 둥 마는 둥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맡은 일을 잘해낸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무능한 사람으로 남지 않도록, 학교생활을 할 때에도 나이에 맞게 학생의 책임을 다하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런 가르침 덕분에 맡은 일은 끝까지 마무리하는 책임감 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궁금한 것은 스스로 찾아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과제를 성실히 하여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반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저를 추천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책임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일을 할 기회도 더 많이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하고 자신 있는 아이 복사하기
<솔직하고 자신 있는 아이>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덕목이 정직과 성실이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처음에 느끼는 죄책감을 견디기 어렵지만, 사람들이 믿어주고 속아주게 되면 다음 거짓말은 더 쉬워지므로 거짓말은 할수록 늘어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의 거짓말은 그것을 감추기 위한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어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솔직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저는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한가한 시간에는 항상 친구들과 축구를 하였습니다. 친구들도 저와 함께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제가 데리고 오는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렸습니다.
저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의견을 밝히는 학생이었습니다. 이유 없이 친구를 놀리거나 따돌리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힘든 상황에 부닥친 친구들을 여가시간에 축구장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어울렸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제가 속한 반에서는 항상 따돌림당하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대놓고 따돌림을 하던 친구도, 친구들의 지지를 받는 제가 따돌림당하는 친구와 어울리는 것을 보면 크게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입시 준비로 바빠서 다른 친구를 신경 쓸 여유도 없었지만, 모두가 입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함께 있는 교실에서만이라도 서로 즐거운 분위기에서 생활하자는 동의가 있어, 학급 분위기가 훨씬 좋았습니다.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불가능했을 텐데, 제 생각에 동의하고 함께 마음을 열어주었던 친구들이 있어서 힘든 입시지옥도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섬세하고 눈치 빠른 아이 복사하기
<섬세하고 눈치 빠른 아이>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뛰어난 아이였습니다. 미술 공작시간에 만들기를 하거나 가사 시간에 실습시간을 좋아하였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꼼꼼하게 만들어내곤 하였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이런 재능을 살려 각종 공예를 배웠고,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친구들의 반응이 좋아 학교 축제 때에는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재미로 한 일이었지만, 한 달 용돈이 될 만큼 판매를 하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작은 선물로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라면서 제가 자주 들은 얘기가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다투는 모습을 절대 저에게 보여주지 않으셨지만, 두 분의 분위기만 보아도 다투셨는지 기분이 좋으신지 알 정도로 눈치가 빨랐습니다. 학교에 다니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제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분위기 파악이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치가 빨라,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의 표정과 말투에서 상대방의 기분을 잘 파악하였습니다.

친구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배려하다 보니,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어떻게 그렇게 내 마음을 잘 아니?’라는 얘기를 자주 들을 정도로 공감을 잘 해주었습니다. 친구들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면 상대방도 저를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항상 친구들을 잘 배려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학생으로 학창시절에는 선생님들로부터도 자주 칭찬을 들었습니다.
등산을 통해 성장하다 복사하기
<등산을 통해 성장하다>
부모님께서 워낙에 등산을 좋아하셔서 어린 시절부터 등산을 배웠습니다. 여름휴가를 갈 때에도 주로 제주도나 지리산 등으로 코스를 정하여 산행하는 것이 부모님의 최고의 여가생활이었습니다. 산에서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먼저 인사를 주고받게 되고, 싸 간 음식은 나눠 먹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배려하고 먼저 인사하고 마음을 여는 것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배려하는 아이로 친구가 많았습니다.

제 인생의 7할은 등산으로부터 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등산을 통해 배운 것은 배려와 인사성만이 아니었습니다. 정상을 오르기까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고 정상에 오르면 비로소 맛볼 수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등산을 통해 인내심을 배웠고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욕을 불태우며 승부욕도 강해졌습니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듯이, 산행하는 것도 인생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고민이 생기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에는 가까운 산에 올라 손톱만큼 작게 보이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이렇게 좋은 취미이자 휴식을 가르쳐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등산하여 정서적으로도 풍요로웠고, 폐활량도 좋고 건강하여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축구와 농구 등 운동을 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면서 활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열정과 절제 복사하기
<열정과 절제>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동생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장남으로서, 동생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다 보니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다른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여, 수업시간에도 항상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적극적이고 운동도 잘하여 학창시절 내내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았습니다. 저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아이였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함께 장난을 치는 것도 좋아하였고, 다른 아이들보다 키도 커서 어디서나 당당했습니다. 야무지고 체력이 뛰어난 데다가, 축구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팀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달리기 속도가 빨라서 체육대회 때마다 반대표로 출전했습니다. 유연성도 뛰어나서 중학교 때에는 무용선생님의 권유로 발레를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학교에 특별활동으로 발레반이 있었는데, 남학생이 턱없이 부족해서 학교 예술제 때마다 공연에 참가하는 등 발레반에서 저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이후부터는 학업에 전념하느라 발레를 그만두었습니다.

경제관념이 철저하셨던 부모님께서 항상 알뜰하게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라서 저도 일찍부터 경제관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설날에 세뱃돈이나 용돈을 받으면 갖고 싶은 장난감이나 신발을 사기보다는 저축을 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썼습니다. 부모님의 생신과 기념일에 선물을 해드리는 데 사용하는 것 외에는 철저하게 아꼈고, 목돈이 되었을 때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노트북 구입비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꼼꼼함과 절제력은 대학 시절 공부를 할 때에도 장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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